중국역사는 말한다._재스민 혁명이 몰고 온 중국해체(박사청구논문)_(Mr. Jung-Sun Kim)_42<세계재활기구_World Rehabilitation Organization>의 자료를 옮겨 제공합니다.<자료제공. http://www.wro5.com>

 

중국역사는 말한다._재스민 혁명이 몰고 온 중국해체_42

 

 

3. 李登辉의 国家统一纲领

 

 

李登辉(lǐ dēng huī) 总统은 제 7대 蒋经国(jiǎng jīng guó) 总统의 서거로 1988年 2月 20日부터 总统職을 승계한 후 1990年5月20日 제 8대 总统으로 취임하기까지 이전과 다른 大陆政策(dà lù zhèng cè)을 주도해 나갔다.

 

특히 8대 总统 취임연설에서 향후 大陆政策(dà lù zhèng cè)의 내용과 방향에 관해 중대한 발언을 통해 两岸关系(liǎng àn guān xī)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李登辉(lǐ dēng huī) 总统이 1988年 2月 22日 기자회견에서 밝힌 大陆政策의 요점은- 첫째, ‘三不政策(sān bù

 

 zhèng cè)’은 지속적인 원칙이다. 둘째, 中国은 四项坚持(sì xiàng jiān chí)와 武力에 의한 台湾침략의 의도를 포기해야 한다. 셋째, ⌜一国两制(yì guó liǎng zhì)⌟는 中国에 맞지 않는다. 넷째, 하나의 中国원칙을 견지한다. (李登辉总统在1988年2月22日记者招待会中发表的大陆政策要点为:一、三不政策是持续的原则。二、中国应该放弃四项坚持和依靠武力侵略台湾的意图。三、一国两制不适合中国。四、坚持一个中国的原则。Lǐ dēng huī zǒng tǒng zài yī jiǔ bā bā nián èr yuè èr shí èr rì jì zhě zhāo dài huì zhōng fā biǎo de dà lù zhèng cè yào diǎn wéi: yī, sān bù zhèng cè shì chí xù de yuán zé. èr, zhōng guó yīng gāi fàng qì sì xiàng jiān chí hé yī kào wǔ lì qīn luè tái wān de yì tú. Sān, yì guó liǎng zhì bù shì hé zhōng guó. sì, jiān chí yí gè zhōng guó de yuán zé。)

 

1990年5月22日 기자회견에서 밝힌 大陆政策(dà lù zhèng cè)의 요점은- 만약 첫째, 中国이 民主政治 및 自由经济 制度를 추진한다면. 둘째, 海峽에서 武力사용을 포기한다면. 셋째, 하나의 中国전제하에 우리가 대외关系를 전개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면. 中华民国(zhōng huá mín guó)는 대등한 입장에서 교류하고 国家统一에 대해 토론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東歐 前苏联(qián sū lián)의 붕괴 냉전体制의 해체 등 일련의 国際정세의 변화에 따라 经济力이 중시되는 新国際질서의 등장과 台湾의 经济성장이 国際社會에서 인정받게 됨으로 对中国政策의 변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또한 台湾내부에서 民主化의 가속화에 따라 两岸关系(liǎng àn guān xī)의 새로운 정립을 시도하게 됐으며, 台湾은 상호간 문화교류를 통해 台湾이 갖고 있는 문화적 과도성과 주변성을 극복하고 중화문화의 정통성과 주도권의 경쟁에서 주체의 위치를 확립할 필요가 가중됐다고 볼 수 있다.

 

1988年7月 国民党(guó mín dǎng) 제 l3기 전국대표대회 이전까지 현역 군인 • 경찰 • 공무원 등의 제한은 있었지만 일반주민 국공립교사 및 직원 등의 大陆방문을 허용했으며, 中国政府 또한 台湾동포의 大陆방문을 조건없이 환영함으로써 40年間 적대적 단절상태에서 민간교류의 새 시대를 열었다.

 

国民党(guó mín dǎng) 제 l3기 党대회에서 ‘현 단계 大陆政策(dà lù zhèng cè) 초안’을 통과시키면서 이때까지 추진되어온 两岸关系(liǎng àn guān xī)를 종합하면서 政治 • 经济 • 社會 • 文敎의 4방면에서 구분해 앞으로 政策이 추진될 것을 강조했다.

 

台湾경험과 민간역량을 집중하여 大陆의 自由化와 民主化를 가속화시킨다는 것을 기본요지로 삼았다.

 

특히 李登辉(lǐ dēng huī) 总统은 국방과 外交 및 大陆政策(dà lù zhèng cè)을 직접 관장하겠다고 천명한 후 1990年 6月 大陆政策과 民主化에 대한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国是會義를 개최해서 각개의 의견을 수렴해 개헌을 통한 내부 政治民主化의 수용과 과감한 大陆政策을 건의했다.

 

당시의 国事会议(guó shì huì yì)의 주요의제는 国會改草 • 地方制度 • 中央政府体制 • 憲法修正 • 大陆政策과 兩岸关系였다.

 

台湾人의 福祉와 大陆의 民主 • 自由를 촉진시킨다는 전제아래 大陆의 개방과 안전이 보장된 大陆政策을 결의하고 구체적인 실천 问题에 있어 ‘一国兩區 兩個政府’로서 쌍방의 政治실체를 인정하고 政治的 统一 담판은 시기가 아직 이르다는 제한적 非政治的 민간교류 확대를 결의했다.

 

民进党(mín jìn dǎng)도 참여해 政策을 제시하며 제한적이나마 台湾 독립운동이 공식적인 政治쟁점화 되는 계기가 형성됐다.

 

国民党(guó mín dǎng)은 체계적인 大陆政策(dà lù zhèng cè)의 결정과 집행을 위한 조직을 강화해 나갔는데, 国民党(guó mín dǎng) 中央위원회에 종래의 大陆工作會 보다 상위조직인 大陆工作所를 만들고, 10月엔 최고 결정기구로서 总统이 위원장이 되는 国家统一委員會(약칭. 国统会(guó tǒng huì))를 总统府에 설치했다.

 

1991年 1月엔 행정원에 기존의 大陆工作會를 폐지하고, 실질적인 大陆업무의 상설 집행기구인 大陆委員會를 설치했다.

 

3月엔 三不政策(sān bù zhèng cè)에 따라 大陆과의 교류라는 기본방침을 유지하기 위한 민간 연락기구로서 海峡交流基金会(hǎi xiá jiāo liú jī jīn huì)<약칭. 海基会(hǎi jī huì)>를 조직해 大陆政策(dà lù zhèng cè)에 대한 자문 • 政策결정 • 政策집행의 3단계 과정을 포괄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정비했다.

 

특히 海基会(hǎi jī huì)는 3분의 2를 政府가 출자하고, 3분의 1은 개인이 찬조한 것이며, 다음과 같은 임무를 갖고 있다.

 

첫째, 两岸의 수출입 문건의 접수비준 운송.

 

둘째, 大陆문건의 공증과 전달.

 

셋째, 两岸의 도망자 추적.

 

넷째, 两岸무역 분쟁조정 해결.

 

다섯째, 문화학술교류 촉진.

 

여섯째, 일반 사무적인 자문 제공.

 

일곱째, 台湾人의 大陆방문의 合法的인 권익협조 및 보호.

 

여덟째, 台湾政府의 기타사항 처리 등 “三不政策(sān bù zhèng cè)” 아래 两岸의 간접교류를 合法化하는 방안으로 “新三不政策”을 내놓았다.

 

이러므로 台湾은 政經分離 • 官民分離라는 원칙아래 공식적인 접촉을 제외한 거의 모든 방면의 민간교류를 묵인 합법화시키는 가운데 실질이익과 国家보안의 평행을 유지했다.

 

동시에 中国의 四项坚持(sì xiàng jiān chí)에 대응하는 ‘三不愛’를 강조해 台湾국민들에 대한 中国의 统一政策에 대한 경계심을 고취시켰다.

 

1991年2月23日 国统会(guó tǒng huì)는 “国家统一綱領”을 수정 통과시켰으며, 总统府는 3月5日 정식으로 실시를 공포했다.

 

3月l4日 행정원은 ‘国统纲领(guó tǒng gāng lǐng)’을 통과시켜 两岸关系(liǎng àn guān xī)의 처리원칙을 세웠다.

 

과거 中国 共产党(zhōng guó gòng chǎn dǎng)을 불법정권으로 여겨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던 태도에서 벗어나 李登辉(lǐ dēng huī) 总统은 中华人民共和国(zhōng huá rén mín gòng hé guó)이라는 국호를 직접 사용, 적대적 태도보다는 실질적인 태도로 两岸关系(liǎng àn guān xī)를 풀어나갈 것임을 나타냈다.

 

또 中国의 和平统一 공세와 ⌜一国两制(yì guó liǎng zhì)⌟에 대응해 三不政策(sān bù zhèng cè)(不接觸 • 不談判 • 不妥協)을 견지하던 것에서부터 벗어나 양국 政府간 회담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물론 中国이 台湾을 대응 政府로 받아들인다는 전제하의 담판이었으나 中国의 ⌜一国两制(yì guó liǎng zh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이는 과거 中国이 四项坚持(sì xiàng jiān chí)와 일당독재를 포기해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에서 탄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즉 李登辉(lǐ dēng huī) 总统이 친히 “三不政策(sān bù zhèng cè)” 포기를 선언하지는 않았으나, 动员勘乱时期(dòng yuán kān luàn shí qī)의 종식과 3가지 조건하에서 中国정권과의 대등한 담판을 말했다는 데서 쉽게 알 수 있다.

 

또 中国의 党对党(dǎng duì dǎng) 담판으로 两岸 统一问题를 해결하려던 의도에 반대한다고만 밝히던 과거의 태도에서 两岸 中国人民의 공의를 존중해 民主과정의 이념에 따라 国家统一 과업에 임할 것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国家统一綱領”은 ‘自由 • 民主 • 均富의 원칙하에 中国의 统一완성’이라는 목표에서 알 수 있듯이 크게 네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一個中国” 견지와 中国统一 추구로서 国统纲领(guó tǒng gāng lǐng)은 하나의 中国 원칙 및 大陆과 台湾은 中国의 領土임을 강조하면서 中国은 하나이지만 中国정권이 中国과 대등하지는 않다고 밝히고 있다. 台湾과 大陆이 하나의 中国 두 개의 지구라는 논리는 台湾과 中华民国(zhōng huá mín guó)은 하나의 등호가 될 수 없으며, 台湾은 中华民国(zhōng huá mín guó) 政府의 소재지이자 中华民国(zhōng huá mín guó)의 부흥기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中国统一은 역사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 또 이 綱領은 명확하게 “两個中国”, “一中一台(yì zhōng yì tái) ”, 台湾독립을 반대하지 않고 있으나 반대의사가 행간에 충분히 나타나 있다.

 

둘째, 和平统一 견지와 武力사용반대로 国统纲领(guó tǒng gāng lǐng)은 理性 • 平和 • 平和 • 等 • 互惠의 원칙을 강조하며, 통일방식은 平和的 이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로써 ‘反共大陆’에서 ‘民主 • 自由 • 均富에 의한 中国统一’로 바뀐 것으로 武力统一이 和平统一로 변한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动员勘乱时期(dòng yuán kān luàn shí qī)의 종결은 中国 共产党(zhōng guó gòng chǎn dǎng)을 더 이상 반란조직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셋째, 台湾지역 人民의 권익의 존중을 통일의 전제로 삼고 있다.

 

넷째, 和平统一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따라서 “统一綱領은 近程(互惠交流段階), 中程(相互信賴合作段階), 違程(统一協商段階)라는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tǒng yī gāng lǐng fēn wéi sān gè jiē duàn, jí jìn chéng (hù huì jiāo liú jiē duàn), zhōng chéng(xiāng hù xìn lài jiē duàn), yuǎn chéng(tǒng yī xié shāng jiē duàn)。>”

 

초보단계인 互惠交流段階는 4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 교류촉진으로 이해하고 호혜로 적의를 없앤다. 교류 중 상대방의 안전과 안정에 대해 위협하지 않는다. 호혜 중 상대방의 政治실체를 부정하지 않고 양호한 상호 역동关系를 건립한다.

 

둘째, 两岸 교류질서를 건립하고 교류 규범을 제정하며, 중개기구를 설립해 两岸人民의 권익을 보호한다. 각종 제한을 점차 완화하고 两岸 민간교류를 확대해 쌍방 社會의 번영을 촉진한다.

 

셋째, 国家统一의 목적 하에 两岸人民의 福祉를 증진한다. 大陆지역은 经济개혁을 가속화하고 여론의 개방을 추진해 民主政治를 실현한다. 台湾지역은 헌정 개혁을 가속화해야 하며 国家건설을 추진해 均富社會를 건립한다.

 

넷째, 两岸은 적대 상태를 마감해 하나의 中国원칙하에 平和방식에 의해 일체의 쟁점을 해결하고, 国際社會에서 상호존중하고 상호 배척하지 않는 상호신뢰 합작단계에 진입한다.

 

단기의 상호 호혜적 교류단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海峽 两岸이 각자 상대방을 政治실체로 인정하는 일이다.

 

그러한 상호실체의 認定问题는 中国측이 견지하고 있는 ⌜一国两制(yì guó liǎng zhì)⌟ 원칙으로 인해 그 실현에 어려움을 안고 있다.

 

과거 台湾측도 “汉贼不两立(hàn zéi bù liǎng lì)”의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同 统一綱領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입장에서 탈피, 상대방을 大陆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政治실체로 인정하게 됐다.

 

따라서 同 綱領에서는 ⌜一国两制(yì guó liǎng zhì)⌟에 대한 반대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一国两制(yì guó liǎng zhì)⌟에 입각한 Hongkong 방식 즉 中央政府와 地方政府 간의 关系설정을 전제로 한 中国의 통일방식은 당연히 배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최우선 政策과제는 中国 당국으로 하여금 ⌜一国两制(yì guó liǎng zhì)⌟를 수정하고 台湾의 政治실체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태도를 변화시키는 일이 과제였다.

 

그리고 海峽两岸의 민간교류의 확대가 台湾统一 政策의 초기단계 중 또 다른 과업으로 설정되고 있다.

 

이를 위해 台湾측은 海基会(hǎi jī huì)를 설치, 台湾측의 중개 기구로서의 기능을 해오고 있다.

 

中国측도 중개 기구를 두게 됐다. 이 단계에 있어 中国大陆의 经济개혁과 개방 및 民主法治化의 적극적인 추진을 유도해가고 또 이를 위해 大陆과 문화 • 학술 • 예술교류를 적극화 해가는 입장을 취했다.

 

특히 이 단계에 있어서 中国으로 하여금 平和的 방식에 의한 분쟁의 해결과 台湾에 대한 武力침공 政策을 포기하는 선언을 하도록 유도해 나가는 것을 중요한 政策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中国은 台湾 독립운동이 台湾에 대한 武力사용의 포기를 못하게 하는 중요한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同 綱領에서는 台湾내의 독립이나 분리주의 운동이 상대방의 武力사용의 구실로 작용하는 것을 적극 회피해 가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国際社會에서의 활동 공간을 확대하기 위한 현실주의 外交를 적극 추진해가면서도 이러한 현실주의 外交政策(wài jiāo zhèng cè)이 “一中一台(yì zhōng yì tái)” 台湾독립에 대한 中国측의 의구심을 촉발시키지 않는데 政策의 중요성을 두고 있다.

 

중간단계인 “相互信賴合作段階”도 4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 两岸은 대등한 政府통로를 만든다.

 

둘째, 两岸은 通邮(tōng yóu) • 通航(tōng háng) • 通商(tōng shāng)을 개방해 공동으로 大陆東南沿海地區를 개발하고 기타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 两岸 人民생활의 격차를 줄여간다.

 

셋째, 两岸은 상호협력을 해 나가 国際조직과 활동에 참가한다.

 

넷째, 两岸 고위층 인사의 상호방문을 추진해 통일 협상의 유리한 조건을 조성한다.

 

이 단계에 있어 중요한 政策과제는 공식적 政府 교류채널을 확립하는데 있다. 이것은 민간교류가 政府와 官房의 접촉교류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中国측은 党对党(dǎng duì dǎng)의 담판에 의한 접촉교류를 우선시키고 있는데 비해 台湾측은 집권당이 两岸关系(liǎng àn guān xī)나 统一问题를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로 이러한 党对党(dǎng duì dǎng)의 담판을 반대하고 대등한 政府간의 교류채널을 건립 해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台湾측에서 볼 때, 이러한 政府 교류채널이 형성되기 위해선 우선 中国이 武力사용 포기를 선언하고 상대방의 政治실체를 부정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

 

따라서 武力불사용과 台湾의 政治실체 인정에 대한 中国측의 명시적 태도 표명이 전제되지 않는 한 제 2단계의 상호신뢰단계로의 진입이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中国측이 우선적으로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三通(sān tōng)은 직접적인 개방을 台湾측은 중간단계에 있어서의 政策으로 설정했다.

 

台湾은 순수한 经济的 고려에서는 이러한 三通(sān tōng)을 앞당길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政治的으로는 제 1단계 민간교류 단계에 있어서 특히 台湾의 政治실체 인정과 武力불사용에 대한 中国측의 명시적 선언이 없는 한 고려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특히 三通(sān tōng)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政府접촉이나 대등한 政府간의 담판을 불가피하게 하는 것인데 상대방의 政治실체 인정에 대한 问题의 해결에 기초가 마련되지 않는 한 어떤 형태의 政府접촉이나 담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지막단계인 “统一協商段階”는 다음과 같다.

 

两岸统一 협상기구를 만들어 两岸人民의 의사에 따라 政治民主 • 经济自由 • 社會平等(píng děng) 및 국내 国家化의 원칙을 병행한다.

 

통일 대업의 협상을 통해 헌정 体制를 제정하고 民主 • 自由 • 均富의 中国을 이룩한다.

 

台湾의 政治的 실체 인정에 대한 中国측의 태도 변화와 상호 신뢰구축을 바탕으로 两岸간의 政府접촉을 비롯한 政府간 교류채널이 열리고 또 쌍방 민간교류는 물론 政府차원 교류가 크게 확대돼 国家统一 기반이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게 되는 경우 两岸간에는 统一협상을 위한 기구를 설립해 国家统一을 위한 방안과 统一 이후 헌정体制에 관한 협상을 진행한다.

 

그러나 国家统一의 형태와 体制와 관한 问题는 中国의 장래에 엄청난 影响을 주는 중요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또 시급히 해결해야 할 성질의 问题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조건과 계기가 형성 될 때까지 미루는 입장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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