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는 말한다._재스민 혁명이 몰고 온 중국해체(박사청구논문)_(Mr. Jung-Sun Kim)_50<세계재활기구_World Rehabilitation Organization>의 자료를 옮겨 제공합니다.<자료제공. http://www.wro5.com>

 

중국역사는 말한다._재스민 혁명이 몰고 온 중국해체_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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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中国과 台湾의 统一论과 한계성

 

 

第 1 章 中国과 台湾의 统一政策의 갈등구조

 

동구와 前苏联(qián sū lián)의 몰락, 新국제질서의 등장은 中国과 台湾关系에 있어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中国의 对台湾政策, 台湾의 对中国政策도 변화를 모색하게 됐다.

 

그러나 中国과 台湾关系는 江八点(jiāng bā diǎn)과 李六条(lǐ liù tiáo)의 대두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단절과 대립부분을 쉽게 극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关系를 낙관할 수 없는 일정 한계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한계는 쌍방의 단순한 政治的 구호나 형식의 변화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우며, 서로의 요구를 자제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형식 절차를 거쳐 타협점을 찾아가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江八点(jiāng bā diǎn)과 李六条(lǐ liù tiáo)으로 본 两岸关系(liǎng àn guān xī)의 한계는 통일방식에 대한 쌍방 지도부의 입장 차이와 정책실천에 있어서 쌍방의 제한적인 상황 • 經貿교류 • 확대에 의한 쌍방의 의존성에 대한 반발작용, 国際政治经济 변화변수에 의한 影响 등의 측면으로 나눠 설명될 수 있다.

 

 

第 1 节 中国과 台湾政治의 형성과정과 실천

 

中国과 台湾 간의 상호 政治力을 통한 “하나의 中国”에 의한 통일에는 两国지도부가 공동 인식을 갖고 있으나, 이를 달성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에 있어서는 일정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 뿐 구체적인 협의는 如今까지 자기주장에 대한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과거 香港(xiāng gǎn_Hongkong) • 澳门(ào mén) 问题와 함께 中国의 통일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으나, 政策입안까지에는 일정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특히 台湾이 주장하는 ⌜一国两府(yì guó liǎng fǔ)⌟가 中国 共产党(zhōng guó gòng chǎn dǎng)의 中国大陆에 있어서의 政治的 실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과거 일관되게 주장하던 台湾政府만이 中国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입장포기를 나타내주고 있으나, 이에 상응해 中国에 대해 ⌜一国两制(yì guó liǎng zhì)⌟에서 제안한 특별행정구 자치政府가 아닌 台湾의 실질적 政治실체를 대등하게 인정 해주기를 원하는 것을 기조로 삼고 있기 때문에 中国측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다.

 

中国은 两岸 간 분열이 과거 東 • 西独(xī dú)이나 联合国(lián hé guó)가입 이후에 韩国(hán guó)•朝鲜(cháo xiǎn)에서 보는바와 같이 완전 분열이 아니라 政府주체 이전이 이미 실현되고, 국가주권의 완전한 통합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 하에서 나타나는 지역적 • 국부적 분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两岸关系(liǎng àn guān xī)의 통합에 있어서는 과거 東独 • 西独(xī dú)이나 韩国(hán guó) • 朝鲜(cháo xiǎn) 关系에서 추구되었거나 추구되고 있는 ‘하나의 민족 두개의 国家’, ‘하나의 国家 두개의 실체’와 같은 방식의 원용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中国은 台湾측이 추구하는 ⌜一国两府(yì guó liǎng fǔ)⌟나 ⌜双中承认论(shuāng zhōng chéng rèn lùn)⌟을 거부하고 있다.

 

결국에는 중국과 대만이 지향하는 통일정책은 향후 两岸의 민간교류가 더욱 확대되면서 两国국민들이 统一政策에 대해 관심과 우려 속에서 각종 政策에 직 • 간접적으로 影响을 끼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문화대혁명은 中国 共产党(zhōng guó gòng chǎn dǎng)과 政府 뿐만 아니라 中国 국민전체에게도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

 

이 때문에 문화대혁명 후, 中国국민들의 党과 政府에 대한 불만은 매우 고조된 상태였고, 이런 불만은 1978~79年의 ‘민주벽운동’ 등을 통해 표현되기 시작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움직임을 통해 中国국민들이 주장하고자 한 것은 ‘민주’에 대한 요구였다.

 

如今에 와서 중국통일에 대한 중국과 대만 간의 견해에 대한 변천과정에 있어서 1세대와 2세대는 혁명 전의 상황을 잘 알아 中国 共产党(zhōng guó gòng chǎn dǎng)과 社会主义 体制에 대한 믿음을 완전 버리지 못하였으나, 3세대와 4세대는 다르다는 점이다.

 

제 3세대의 경우, 문화대혁명 초기에는 홍위병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나, 이후 농촌지역으로 下放을 당하면서 党과 政府에 강한 불만을 품게 되었고, 제 4세대의 경우는 共产党과 혁명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을 뿐더러 외국의 상황을 알고 낙후한 中国의 党과 政府에 대해 ‘경제발전’과 ‘민주’라는 기준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제 3 • 4세대들의 민주 요구는 상기에서 거론된 바 있는 ‘민주벽운동’을 기점으로 1985年의 학생운동 • 1986年의 학생운동 • 1986年 말, 1987年 初의 민주화운동, 1989年6月4日. ‘천안문 사건’ 등을 통해 변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中国은 两岸이 中央과 地方의 방식을 피하고 平等(píng děng)한 지위에서 政治的 담판을 진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党对党(dǎng duì dǎng) 담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台湾은 이에 ⌜三不政策(sān bù zhèng cè)⌟을 주장하였고, “国家统一綱領”을 반포한 이래 两岸의 정치성 담판은 반드시 国统纲领(guó tǒng gāng lǐng)이 중간단계에 진입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진행방식도 정식 政府신분의 政府对政府(zhèng fǔ duì zhèng fǔ)의 담판이지 결코 党对党(dǎng duì dǎng)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즉, 台湾의 ⌜一国兩政治⌟ 實体에서는 中国이 현재 잠시 두개의 지역으로 분열되어 있고, 두 지역에 각각 존재하고 있는 중화민국 政府와 中华人民共和国(zhōng huá rén mín gòng hé guó)政府는 본질상 완전히 대등한 政治실체로서 쌍방이 현재 관할하고 있는 토지와 인구 그리고 실행하고 있는 제도는 각각 다르나 양자의 상호교류 과정은 당연히 平等(píng děng)한 지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 中国과 台湾지도자의 인식차이

 

两国지도부의 인식 차이는 两岸의 실질적인 统一논의를 가로막고 있다.

 

江泽民(jiāng zé mín)은 台湾과 기타 国家와의 문화경제발전 关系에 대해선 이의를 달지 않았지만 台湾의 务实(wù shí)外交政策에 대해선 분명한 의사를 나타냈다.

 

과거 党对党(dǎng duì dǎng) 담판에서 两岸지도자가 적당한 신분으로 상호방문하자는 것은 진일보한 제의였으나, 이는 과거와는 달리 台湾에서 国民党(guó mín dǎng)가 政治를 일방적으로 리더 해나가는 것이 현재 변해가고 있다는데서 적지 않은 요인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과거에 비해 中国지도부가 台湾을 보는 시각이나 台湾지도부가 中国을 보는 시각이 급격하게 변하지 않는 한 적극적인 통일논의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

 

两国지도자간의 이견은 江八点(jiāng bā diǎn)과 李六条(lǐ liù tiáo) 외에서도 지난 1995年9月 对日抗戰勝利 50週年 기념활동에서도 쉽게 드러났다.

 

李登辉(lǐ dēng huī) 总统은 9月3日 대북에서 거행된 경축행사에 总统재임 8年 기간 중 처음으로 참석, 치사를 통해 江八点(jiāng bā diǎn)과 李六条(lǐ liù tiáo)가 미래 两岸关系 추진의 가교가 될 것이라면서도 쌍방의 상치되는 견해의 기초가 된다고 평가했다.

 

이날 北京(běi jīng)에서도 고위층 인사와 1만 명의 각계 대표가 천안문 광장에서 인민영웅기념 外 헌화의식을 가진 후 인민대회당에서 기념집회를 가졌다.

 

江泽民(jiāng zé mín) 国家主席(zhǔ xí)도 이날 “中国 共产党(zhōng guó gòng chǎn dǎng)과 中国政府는 조국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회복을 위해 일체의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 임을 재천명하면서 “어떤 사람이 외부인의 힘을 빌려 조국을 분열시켜 조국을 배반하려고 하는데, 이는 천고의 죄인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台湾의 务实(wù shí)外交를 펴나가는 李登辉(lǐ dēng huī) 总统 등 台湾지도부를 이같이 간접적으로 비난하면서, 中国과 台湾사이에서 자국의 이익을 꾀하고 있는 美国의 对中国政策 변화를 겨냥한 발언이다.

 

또 中国부총리 겸 외무부장인 钱其琛(qián qí chēn)은 1995年9月30日 뉴욕에서 两岸분열이 고착화되고, 두개의 国家가 되고 난 후 통일을 고려하는 것은 緣木求魚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钱其琛(qián qí chēn)은 담판을 통해 两岸의 통일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中国人의 일은 외부의 조력이 필요 없기 때문에 两岸지도자가 국제회의석상에서 만나는 것도 불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회담의 3개의 조건을 제시했는데 ‘좋은 분위기, 적당한 기대, 좋은 결과’가 배합돼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钱其琛(qián qí chēn)은 어떤 조건하에서도 “兩個中国 • 一中一台(yì zhōng yì tái) • 台湾독립추진” 등은 허락 될 수 없다면서, ⌜一個中国⌟을 강조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하나의 中国”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으며, 심지어 中国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고 하는 데에 분명히 반대한다고 밝히면서 中国역사상 분열이 발생했었고, 내부의 변화도 있었으나 中国人은 하나의 中国을 인정하고 있으며 两岸의 분열로 分裂 • 分治가 고정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나의 中国에 의한 통일에는 两国지도부가 공동 인식을 갖고 있으나, 이를 달성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에 있어서는 일정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 뿐 구체적인 협의는 아직은 배격되고 있다.

 

과거 香港(xiāng gǎn_Hongkong) • 澳门(ào mén) 问题와 함께 中国의 통일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으나 政策입안까지에는 일정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특히 台湾이 주장하는 ⌜一国两府(yì guó liǎng fǔ)⌟가 中国 共产党(zhōng guó gòng chǎn dǎng)의 中国大陆에 있어서의 政治的 실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과거 일관되게 주장하던 台湾政府만이 中国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입장포기를 나타내주고 있으나, 이에 상응해 中国에 대해 ⌜一国两制(yì guó liǎng zhì)⌟에서 제안한 특별행정구 자치政府가 아닌 台湾의 실질적 政治실체를 대등하게 인정 해주기를 원하는 것을 기조로 삼고 있기 때문에 中国지도부가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다.

 

따라서 中国지도부는 联合国(lián hé guó)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에서 台湾이 中国과 대등한 지위를 확립하려는 의도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다.

 

즉, ⌜兩個中国 • 一中一台(yì zhōng yì tái) ⌟를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불신이 내포돼있다.

 

中国으로서는 李登辉(lǐ dēng huī) 总统을 입으로는 통일을 주장하나 속으로는 독립을 꾀함(鸣统暗独(míng tǒng àn dú))하는 위선자로 인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