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워(War) 게임_(Mr. Jung-Sun Kim)_(2-12)

 

 

1. 군사전략의 개념

2. 한국의 군 구조 실태와 문제점

3. 예상되는 한국군의 작전술

4. 전쟁과 군비통제 항공강압 및 해군전략

 

 

1. 군사전략의 개념

 

 

중세에 있어서 획기적인 두 가지의 발전적인 변화는 중국으로부터 화약이 도입됨으로써 14세기 후반에 총․포가 등장하였으며, 화약에 의한 대포의 개발에 힘입어 해전의 규모가 확대된 것이다.

 

포르투갈에 의한 인도항로의 개척과 스페인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에의 항해가 이루어짐으로써 대항해시대가 도래하여 유럽제국은 식민지 획득과 유지를 위한 해군력 건설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다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의 통상을 지배하고, 또한 세계의 부와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는 월터렐리의 말대로 대영제국과 미국이 19세기와 20세기에 융성을 바다에서 찾도록 동기를 부여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중세의 전쟁을 규정했던 제한전쟁이나 간접전략을 배력하고 손자형 전쟁관이 클라우제비츠형 전쟁관으로 이행됨으로써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왕제전복과 국왕처형)의 열기를 확산시켜 반혁명 연합을 형성하여 압박하는 인접국가들에 대항하기 위해 사단(Divisional) 개념을 도입, 귀족으로 충원되었던 사관이 평민출신으로 대치되고 자유지원병으로 애국적 감정이 충만한 중세형 군대와 결별한 국민군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둔중한 군을 분할․운용함으로써 작전의 융통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집단의 위력과 중력에 의존하던 밀집 종대 대형을 버리고 개개인의 전투의지에 의존하는 산개전술을 채택할 수 있게 되었다.

나폴레옹군의 보병은 1분간 120보를 부대 행군속도로 설정함으로써 유럽 여러 나라 왕군의 표준분속 70보를 기동력에서 압도하였으며, 그 외에도 분진합격전술이나 척후병 활용 및 밀집종대의 기동성 있는 돌격으로 일거에 적을 제압하는 등 특이한 전법도 사용했다.

 

그리하여 고대로부터「프러데릭」대왕시절까지 사용된 밀집대형 전술은 점차 퇴색되어 갔다.

 

또한 군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고대 군 처럼 측익(側翼)을 쉽게 찾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군의 통제가 사령관의 지휘범위를 벗어남으로써 총체적인 사령관의「작전개념」을 예하사령관이 구체화 시켜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고대군은 최고사령관의 시야에서 육안을 적의 측익을 보고 들어 갔으나 이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효과적인 적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측익을 만들어 돌파하는 개념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인식한 「나폴레옹」은 측익탐색(out flaonk)에 이어 돌파(Break-in, through)하는 기동방식을 취하였다.

 

이처럼 모든 국가는 국가보위의 한 방편으로 국가목표를 설정하고 국방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군사력을 건설하고 관리하고 유지하며 운용하는데, 이는 군사정책과 군사전략을 통하여 실현된다.

 

군사정책은 군사력의 건설, 유지에 관한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국가예산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국정기능이며, 군사전략은 군사력의 배비와 운용을 다루는 군령기능으로서 이들은 수레의 앞뒤바퀴로서 상호보완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중에서 군사전략은 군사력의 운용을 다루는 술「術」(Art)과 군사에 관한 이론적 탐색을 포함하는 과학(Science)의 문제로서 세계 각국은 군사이론 체계 내 에서 용병체계로 이문제를 다루어 가고 있다.

 

용병체계는 국가마다 조금씩 상이하나 보편적으로 군사전력과 작전술, 전술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작전술은 군사전략과 전술의 연결고리로서 아주 중요시되며, 협의로 볼 때 용병술은 작전술을 말한다.

 

작전술은 나폴레옹으로부터 태동하고 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제정러시아의 참모장교였던 A. Gerua대장과 E. Messner 대령의 두 사람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오뻬라찌까」라는 용어로 설명했던 유사개념을 인용하여 제정러시아 육군소장 A. Svechin이 「전략」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형성시킨 독특한 군사교리이며, 1950년대에 독일이, 1980년대 이후부터 미국육군에서 사용하고 있다.

 

어원의 창시자인 소련의 A. Svechin은 작전술을「군사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부대작전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이론과 실제」라고 정의하였고, 소련군은「각 군종의 독립 및 합동작전의 준비와 수행을 위한 이론과 실제를 다루는 것이며, 전략과 전술을 연결시키는 요소」로 보고 있으며, 미국군은 전구(戰區)내에서 전략적 목표를 획득하기 위한 군사력 운용기술로 보고 있어 전략은 최초에는 「전시 군사력을 운용하는 장군의 술(術)」로 통용되었다.

 

즉 전략은 평시가 아닌 전시에, 군사력을 운용하는 장군, 즉 야전지휘관의 술(術)로써 그 범위가 한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그 범위가 단순하고 한정적이었던 전략개념이 시대가 변천됨에 따라 일반화되어감으로써 그 범위가 내외적으로 크게 확장되었다.

 

이것은 전쟁과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상호 긴밀하게 연계됨에 따라 전쟁전략도 정치, 경제, 사회, 심리, 과학기술 등 여러 가지 비군사적 요소를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핵무기의 출현으로 억제가 전략의 초점이 되고 전쟁이 미치지 못하는 평화적인 군사력의 운용형태인 강압시위 등이 군사력의 주요 역할로 대두된 이래 전략개념은 목적과 수단의 양면에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개념의 확대는 개념의 혼란을 가져왔다.

 

개념의 일반화는 정치, 경제, 사상 등의 고유의 영역에 전쟁요소를 개입시킴으로써 본래의 의미를 훼손시켰으며, 또한 전략을 평시 군사력 운용의 술(術)로 확대함으로써 전쟁과 평화의 구분이 모호한 상황 하에서 전략 고유의 개념을 왜곡시켰다.

 

결국 전략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는 것이며 그것은 적의 의지를 굴복시킴으로써 달성된다. 의지를 굴복시키려는 노력은 2개의 상반된 의지간의 변증법적 투쟁이다.

 

상대방의 의지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쌍방은 국내외적인「행동의 자유」를 적에게 거부하여 군사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적 군사력의 격멸, 또는 적 조직을 와해시켜 적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전략은 한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전쟁에서 자연히 총체적인 수단을 사용하므로 수단의 운용에 중점을 둔다.

 

리델하트(B. H. Liddell Hart)는 전략이란 정책상의 제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군사적 수단을 배분하고 운용하는 술(術)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8세기 최고 전략가 삭세(Marchal Maurice de Saxe)도「다른 모든 과학은 고정된 원칙의 토대위에 확립되어 있으나, 전쟁이란 과학만은 원칙이 결여되어 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전쟁의 마성과 지휘관의 임기응변성(improvisation)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전쟁의 특성을 사회변혁, 인간성격, 그리고 국제관계의 포괄적 연구를 통한 철학적, 이념적, 심리적, 그리고 정치․사회적으로 명확화 및 합리화함으로써 초 현대화된 무기(특히 대량살상)가 클라우제비츠의 절대전쟁을 현실화시킨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가진다.

 

즉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전쟁의 본질은「집권적, 의도적, 나아가서 조직적인 폭력으로서의 사회적 성격과 육체의 철혼이나 정신력으로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하는 공인된 살인」이란 두 가지 측면이라 하겠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상시에는 하나의 인간을 죽여도 살인자가 되지만, 전쟁에서는 100만인의 적을 죽여도 영웅이 되는 바, 전쟁은 국가가 공인한 폭력적 가해행위이다.

 

흔히 직업군인을 「폭력관리의 전문가」라고 칭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모든 국가가 폭력기술자를 합법적으로 훈련․양성․보유하고 있는 이상, 무기를 사용하는 직업(profession in arms)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인자 카인의 후예인 인류는 유사 이래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다.

 

전쟁의 성격도 변천․진화해온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분명한 것은 금세기의 전쟁은 한 지역이나 한 국가 또는 한 부족이나 한 민족을 넘어서서 지구라고 하는 혹성, 인류라고 하는 생물학상의 종 그 자체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대형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