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혁명. (부제: 국가통치사상학)_31/100회_혁명의 끝.

 

 

3. 공산주의 비판

 

마르크스에 의하면 공산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계 국가의 실현이다.

 

즉, 국가가 완전히 소멸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차다운 공산주의 사회가 이룩되기 위해서는 세계적 규모에서 공산주의의 승리가 있은 뒤에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자들은 이미 1840년대에 그들의 조직을 강화하고 국제화시키기 시작하였다.

 

독일, 화란,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들은 1844년에 「민주주의자 동맹」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였고, 1847년에는 독일인을 중심으로 런던에서 근세 공산주의 운동의 첫걸음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 「공산주의자 동맹」을 창설하였으며, 드디어 1848년의 「공산당 선언」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약 140여 년의 시간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마르크시즘」이 그동안 세계정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지금까지도 세계를 양대 진영으로 갈라놓고 있다.

 

「마르크시즘」은 대체로 이것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역사와 전통, 그 국가의 발전단계와 경험, 그리고 실제의 정치와 그 국가와 그 민족의 이해관계 등이 큰 역할을 하면서 해석상의 큰 차이를 보이며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문제에 눈을 돌려 노동자들이 자기노동의 생산물로부터, 노동 그 자체로부터, 인간적, 인류적 존재로부터, 그리고 인간성으로부터의 인간의 소외라는 문제를 제기하여, 사유재산 제도가 존재하는 한 불가피한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이렇게 초기 자본주의를 경제적으로 분석하여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을 빈곤과 착취, 그리고 소외로부터 해방시켜야겠다고 인식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Der Wissenschaftlich Sozialismus)는 착취와 억압, 그리고 소외로부터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해방을 목표로 삼았다.

 

궁극에는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마르크시즘」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계급 투쟁론에 입각하여 「러시아」혁명을 수행한 레닌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러시아 실정에 맞추기 위하여 「마르크스」사상의 일부는 왜곡하고, 일부는 무시하여 버렸다. 그 결과 폭력혁명과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만을 강조하게 되었고, 「마르크시즘」을「제국주의자와 독점 자본가들에 대한 증오사상」으로 만들었다.

 

그 후 「공산주의자 동맹」이 해산되던 1852년 무렵 시작된 유럽에서의 노동운동에 편승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64년에 런던에서 창설된「국제노동자 협회」에 참가하였는데 이것이 사회주의자들 최초의 국제적 혁명조직인 이른바 「제1인터내셔널」(Die Erste Internationale 1864~1876)이다.

 

이 협회의 규약 전문에서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계급 자신에 의하여 쟁취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함으로써 이 협회가 「마르크시즘」적 원칙 위에 서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제1인터내셔널」의 특색은 마르크스의 폭력주의와 계급투쟁을 앞세운 것이지만 조직의 미비로 여러 분파 작용을 일으켜 결국 1872년 이후부터는 그 활동이 마비 상태에 빠졌다.

 

1883년 마르크스의 사망 후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은 더욱 분열을 거듭하다가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엥겔스의 제창에 따라 1889년 「브뤼셀」에서 회의를 갖고 「사회주의 노동자 인터내셔널」이라는 국제적 조직을 다시 결성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제2인터내셔널」(Die Zweite Internationale 1889~1914)이다.

 

「제 2인터내셔널」은 독일 사회민주당이 중심세력이었는데 카우츠키(Karl Johann Kautsky 1854~1938)의 비폭력적 의회주의가 지배적 이념이었던 특색이다.

 

당시에도 「마르크시즘」은 여러 사람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었었는데, 이른바 이들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사회주의는 혁명이 없어도 즉, 폭력에 의한 정권의 박탈을 주장하지 않고 현 부르주아 사회 내에서 단체 활동과 단체교섭 및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과의 전술적인 합작만 있으면 사회개혁이 충분하다고 본다. 그래서 이들 수정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만의 혁명이나, 독재의 개념을 포기하고, 계급투쟁의 이념과 더불어 국제노동자들의 연계성을 사실상 포기하여 노동자들도 자기의 조국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 수정주의자들은 그들의 개혁을 위한 노력 내지 투쟁을 국내문제로 돌리고 계급투쟁의 개념을 계급협조의 개념으로 바꾸는데 있다.

 

이와 같은 사람들 가운데는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1941), 멩거(Anton Menger, 1841~1906), 베른슈타인(E. Bernstein, 1850~1932)등 많은 학자들이 마르크시즘에 대한 수정론을 제창했는데, 그 중에서 최초로 가장 신속하게 비판 • 수정을 가한 것이 베른슈타인이다.

 

베른슈타인은 카우츠키와 더불어 엥겔스와 친했으며 독일 사민당에서 마르크시즘의 가장 권위 있는 이론가였고 또한 그는 독일인이었으나 영국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으로 영국 폐비안 협회(Fabian Society)지도자들과도 교류를 가졌으며, 사회는 마르크스와 같은 급진적인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혁을 부르짖은 사람이다.

 

베른슈타인은 마르크스가 예측한 것과 같이 자본주의가 발전하여도 계급투쟁이 격화되거나, 무산자계급의 생활의 악화되지도 않기 때문에 혁명적인 방법보다는 의회를 통한 점진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이 사회민주당의 혁명전술로 합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즉, 혁명적 방법은 사회적 발전에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보다 빠른 속도로 행동할 수 있고, 합법적 입법은 이러한 속도 문제에 있어서 느리게 작용하나 혁명적 방법보다는 더 설득력이 있으며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이로운 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입법을 통한 개혁이 긍정적으로 사회 • 정치적 활동에 가장 잘 적응한다고 주장하여 폭력혁명을 통한 투쟁은 정부나 특권적 소수를 전복할 수 있지만 민족은 전복할 수 없으며, 가족과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프롤레타리아만 가지고는 어떤 지속적이고 확고한 개혁운동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레닌의 정권탈취 방법과 정당성도 공격하였다.

 

이상과 같은 주장을 내세우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한 유물사관 • 변증법 등의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을 비판하였고, 가치론이나 공항론 등의 경제이론에 대해서도 많은 이견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그는 「마르크시즘」을 수정 하고자 한다고 하여 「수정주의자」로 불리게 되었고, 카우츠키와 로자 룩셈부르그(Rosa Luxemburg 1870~1919)로부터 비판을 받기까지 하였다.

 

카우츠키는 이른바 교조적인 「마르크시즘」을 옹호하는 사람으로서 베른슈타인이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사회혁명을 부정한데 대하여 무엇이 사회 혁명인가를 규명하기 위해 영국의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등은 희미한 반항이지 진정한 사회혁명이 아니라고 한다. 사회혁명은 정치 • 경제의 규모가 작고 사회적 의식이 너무나 발달되지 않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는 존재하지 않고 사회혁명은 오직 자본주의 시대의 모든 계급 가운데 가장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해서 일어나며, 이 혁명은 자본주의와 더불어 소멸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혁명은 그 시기가 지나갔는가 아니면 지나가지 않았는가에 대하여 자문자답하여 그가 대답하기를 사회혁명은 특별한 역사적 조건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역사적 조건이란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하에 계급적 대립 관계뿐만 아니고 강력한 군사적 및 관료적 국가 그리고 경제적 발전의 급속한 속도의 기초 위에서 세워진 대규모의 민족국가를 전제로 한다고 하여 사회혁명의 요소들이 훨씬 강화되었다고 한다. 정부 권력이 이처럼 강화되었다고 하는 것은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 계급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분노가 더욱 강렬해지고 계급적 증오가 증대되어 국가기구를 탈취하려는 노력은 더욱 강렬해지고 있는 과정으로 보았다.

 

따라서 카우츠키는 ‘우리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모든 패배를 경험하면서도, 다시 한번 일어섰기 때문에 이전 보다 더욱 자본가 계급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고, 아직 프롤레타리아승리하지 않았으므로 두 계급간의 전투는 끝나지 않은 것이며 끝날 수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수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점진적인 발전이란 그들이 필요해서 만든 하나의 유토피아(utopia)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카우츠키도 자본주의는 자연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붕괴하나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의회주의적, 평화적 방법에 의해서도 가능하다고 하여 급진 좌파의 로자 룩셈부르그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 「제 2인터내셔널」도, 베른슈타인 등의 수정주의로부터의 공격과 조직의 취약성 그리고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붕괴되고 만다.

 

「제 2인터내셔널」의 해체는 사회 민주주의에 대하여 회의를 품고 있던 레닌으로 하여금 새로운 국제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레닌은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각 국에서 좌익 사회주의자들이 다투어 공산당을 결성하기 시작하자, 1919년3월2일 각 국으로부터 대표자를 초청하여 「공산주의 인터내셔널」(Komintern, Die Dritte Internationale)을 결성하여, 러시아 공산당은 이를 통하여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완전히 지배 하고자 하였다.

 

레닌의 사후부터 「스탈린」주의에 이르기까지, 즉 1920년대 중반에서 1950년대 초까지 스탈린은 이미 레닌이 변화시킨 「마르크시즘」을 다시 착취와 억압의 한 새로운 형태인 관료적이고-중앙 집권적이며-테러적인 체제를 위한 정당화 사상으로 변화시켰다.

 

그래서 레온하르트(Wolfgang Leongard)도 「마르크시즘」은 러시아에서 그의 최초의 개념들이 거의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레온하르트(W. Leonhard)는 그의 저서 「소비에트 이데올로기(II)」(Sovietideologie heute II)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를 「소비에트」의 견해를 빌어 낮은 단계는 사회주의, 그리고 높은 단계는 공산주의라고 설명한다. 즉, 그들에 의하면 <레닌이즘은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시대의 마르크시즘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적인 레닌이즘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론과 전술이며, 특별한 경우로는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이론과 전술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성숙도에서만 차이가 있는 동일한 사회체제의 두 단계라고 보았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두 단계는 착취계급이 없다는 점,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극복되었다는 점, 생산수단이 사회의 소유가 되고 인간욕구의 충족을 위해 계획성 있게 노력한다는 점과 같은 공통성을 갖고 있는 반면, 사회주의에 있어서는 아직 국가가 존재하나, 보다 높은 단계인 공산주의에 있어서는 사회계급의 분화가 폐지되고 인간의 높은 의식으로 국가권력의 필요성이 사라진다는 차이점이 있고, 또 사회주의에 있어서는 「각각의 사람에게는 그의 업적에 따라서」(Jedem nach séiner Léistung)라는 원칙에 따라 노동실적의 양과 질에 따른 「재화의 분배」(Verteilung der Guter)가 실시되나, 생산력이 훨씬 높은 수준에 이르고 노동이 첫 번째 생활 욕구가 된 공산주의에 있어서 재화의 분배는 「각각의 사람에게는 욕망에 따라서」(Jedem nach seinen Bedürfnissen)라는 원칙에 따라 실시된다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소련에서도 처음에는 「마르크시즘」과「레닌이즘」은 두 개의 개념으로 구분되었으나 1926년 1월 5일 부카린(Bucharin)이 행한 연설에서 <레닌전집은 지난 몇 년 동안 마르크스-레닌 노선의 상위를 극복하는 데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표현한 데서부터 「마르크시즘」과 「레닌이즘」사이에 연자 부호인 - 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스탈린도 1928년11월19일 당 중앙위에서 「우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의 당」(Die Partei der Marxisten-Leninisten)이라고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름을 함께 사용하였다.

 

그러나 1934년 제 17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스탈린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표현보다는 「레닌」주의라는 용어를 훨씬 더 자주 사용하다가 1938년과 1939년에 이르러 스탈린은 소련 내에서나 소련 밖의 「코민테른」회원국들에 대한 선전을 목적으로 다시 「마르크스」의 이름을 넣어 「마르크시즘-레닌이즘」과 같이 사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응용되는 가운데서 이미 그들이 말하는 정통 「마르크시즘」은 「레닌이즘」과 「스탈린이즘」을 경과하는 동안 많이 왜곡되거나 변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과 같은 공산체제의 모습에서는 모두 소련이 레닌, 스탈린을 통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으로부터 이탈 현상을 보였듯이 동구는 개혁주의를 통하여, 서구는 「유로코뮤니즘」을 통하여, 중국은 모택동주의를 통하여, 그리고 북한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통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으로부터 많이 변형된 제각기 특이한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