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라는 허위의 매력, 실패된 허구의 마르크스 혁명이론 표절에 가깝다.

 

세계경제구조는 “인간존엄성 가치를 추구하는 실용자본주의(또는 경제통합자본주의)”로 전환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차세대 보수 및 진보정당들이 함께 부르짖고 있는 “경제민주화” 라는 정의는 무엇일까? “경제민주화”의 개념은 마르크스 혁명이론에서 근거하는, “경제(하부구조)+민주화(상부구조)”의 결합체로써, 이미 역사발전을 통해 검증되고 실패된 논리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나오게 된 동기는 역사의 단계에 있어서, 국가의 발생이 계급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났고 국가의 기능과 목적은 폭력적 탄압기구이다. 그 구성원인 부르주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착취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즉 국가는 여러 계급의 대립을 억압하기 위해 생긴 기구이기 때문에 지배계급이 국가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특수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그들의 법적 • 정치적 • 이데올로기적인 상부구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에만 도취한 나머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억압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결국 이때부터 두 계급간의 심한 모순과 갈등은 바로 변증법의 정(These)과 반(Antithese)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결국 합(Synthese)이 이루어져 사회적 진보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 등을 전제로 마르크스주의를 형성하고 있는 제 이론과 학설은 많은 선행이론과 학설을 수용하고 취사 • 선택하는 과정을 거쳐서 구성되고 체계화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3개 원천의 가운데 하나가 경제학이다.

 

마르크스가 역사상의 모든 위대한 혁명은 궁극적으로 경제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우선 프랑스대혁명을 고찰하고, 그것을 비판관계에서 규명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혁명이 사회 • 경제적 영역까지 침투됨으로써 완전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프랑스대혁명(1867년3월18일~동년 5월 27일까지의 파리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세웠던 파리시 혁명정부)을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으로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달성할 수 있는 정부형태로 간주하였다. 이것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본모델(model)로 삼았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와 같은 주장은 국가가 발생하는 데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든가 기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요인만을 강조하게 되어 계급투쟁을 조장하여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유물론에 꿰어 맞추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국가의 정의를 지배계급의 투쟁을 수행하는 기구의 일부분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국가 정의 이론의 귀결은 정치제도 즉, 정치는 무력하고 경제적 실재를 변경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마르크스는 사회의 궁극적 지주는 경제구조에 있다. 사회의 하부구조(substructure)인 경제제도가 항상 사회의 실질적 기반을 구축하고, 사회의 상부구조(superstructure)인 법 • 철학 • 정치 • 종교 등의 여러 가지 제도는 하부구조를 기초로 하여, 유물론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전제하에서 노동가치설과 잉여가치를 연구하게 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사회발전에 있어서 기본적인 요소는 경제적 조건이고, 그 사회의 발전은 변증법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 사상으로 성장되었기 때문에 실재(reality)와 현상(appearance)사이에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구별과 무엇이 본질적이고, 무엇이 우연적인 것(what is essential and what is accidential)과의 상응하는 차별에 의하여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는 실재(reality)가 물질세계(material world)와 일치하고, 현상이 이념, 혹은 관념(thoughts or idea)과 일치하는데서 헤겔 사상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사상과 관념을 밑에 놓여 있는 본질적 실재, 즉 경제적 조건으로 나타냄으로써 설명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일부분은 맞을지는 몰라도 모든 것을 너무 성급하게 취급한 나머지 자체의 모순으로 빠지게 되었다. 즉, 경제적 요인에 의하여 자본주의 국가는 기필코 망한다는 예언은 오늘날 많은 자본주의 국가가 상존해 있음을 마르크스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현대사회에 있어서 국가가 안정되어야 경제도 발전하고 경제도 발전해야 국가도 안보도 튼튼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경제우위만을 주장할 수도 없고, 또한 정치우위만을 주장하는 것도 모순이다.

 

마르크스가 사회를 분석할 때 가진 자와 못가진자를 중심으로 풀어 나가는데, 생산력이 변화하고 자연적으로 생산관계가 변함에 따라 생산수단의 가진 자와 못가진자가 형성되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때문에 가진 자와 못가진자가 증가 확대되었다. 급기야는 못 가진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혁명이 발생되어 낡은 생산관계는 새로운 생산관계에 의해서 바뀌고, 최종적으로는 마르크스가 바라는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고정을 변증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노예제도, 봉건제도, 자본주의제도가 자체 내의 모순 • 대립에 의한 변증법의 순서에 따라 공산주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모순 • 대립을 통한 변증법적 발전은 역사의 필연적인 법칙이라고 생각하였다.

 

헤겔의 변증법인 정(thesis) • 반(antithesis) • 합(synthesis)의 이론이 마르크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사회주의 혁명을 실천적 이론으로 합리화시키는 방법을 거쳐 최종목표를 하는 사회는 「공산사회」에 두었다. 그리고 포이엘 바하와 마르크스가 말하는 물질과 인식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물질이 우리 인간 두뇌에 비친 영상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죽으면 두뇌도 없어질 것이고, 두뇌가 없다면 물질도 없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마르크스의 이상향이었으며 모든 공산주의자들의 영원한 안식처로 향수되고 있는 공산사회는 어떠한 사회일 것인가?

 

이에 관하여는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어느 공산주의자도 체계 있게 포괄적으로 청사진을 제시한 일이 없다. 다만 공산주의 유물사관에 따르면 마르크스나 엥겔스 그리고 레닌 등 공산주의자들은 공산당에 의한 폭력혁명을 통하여 공산사회의 실현이 단축될 것이며, 또 단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아마도 당시의 역사결정론을 철저히 신봉하다가 공산당에 의한 공산혁명이라는 주의설(Volutarism)로 표변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필연론을 부과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가변성으로 전화하는 공산주의 유물사관 속에는, 서로 상극에 있는 두 견해가 아무런 해명도 없이 공존함으로서 철저한 논리적 모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어떤 이론이 타당하거나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가려내는 기준은 실천운동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이론의 타당성과 진리성 여부를 검증하는 척도와 기준을 실천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하겠다.

 

칼 만하임의 「지식사회학」에 의할 것 같으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주의 • 사상일지라도 절대적이거나 신성불가침한 것이란 있을 수 없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때와 장소의 제약을 넘어 보편성과 타당성을 갖는 영구불변의 진리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이라는 유한적 인간두뇌의 소산인 마르크스-레닌주의도 많은 오류를 갖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오늘날 중국을 비롯한 많은 공산주의 국가와 공산당마저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거부,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적용능력을 잃어버린 지난 시대의 사상이론이다. 19세기에 낳은 사회적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편적 혁명이론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너무 확대 해석함으로써, 원래 극우나 극좌를 싫어하고, 오히려 극우나 극좌를 중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중산층이 결여되어 있어, 오늘날 아주 위험스러운 상태에 있다고 할 것이다.

 

소위 마르크스의 혁명이론은 러시아에서 1917년 10월의 볼셰비키(Bolsheviki)혁명 후 통치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계승한 레닌 역시 마르크스의 이론을 많이 수정했거나 뒤엎기도 하였다.

 

이것을 ‘마르크스주의의 창조적 해석’(the creative interpretation of Marxism)이라고 변명했으나, 마르크스와 레닌 사이에는 많은 모순점과 상이점이 있다.

 

스탈린 시대에 이르러 소련이라고 하는 하나의 강대한 국가를 위한 관제 또는 관인 이데올로기로서 국가교의(state doctrine)로 변질 • 전락하였다. 현대의 ‘강권적 •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이며, 폭력혁명 • 계급투쟁 •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골간으로 한 전투적 • 광신적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하였다.

 

따라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사상이론이 아니라, 철저하게 당파적이고 목적적이다. 공리적인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간혹 젊은이들을 일시적 • 충동적으로 사로잡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허위의 매력’(fascination of fallacy)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르크시즘은 오늘날 전혀 무용하고 완전히 사라졌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선진 자본주의가 아니라, 주로 후진지역에서 상당한 위력을 갖고 있다. 아직 중산층이 형성되지 못한 후진국에서는 마르크스의 망령이 살아있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아시아 • 아프리카 • 라틴아메리카 등의 신생국은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으나, 경제적 자립을 이룩하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Thank you very much.

 

February 23, 2012

 

 

World Rehabilitation Organization (WRO)

Mr. Jung-Sun, Kim.

Chairman of W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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