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혁명. (부제: 국가통치사상학)_10/100회_정경혼맥권력.

 

 

2) 권력추구형 정 • 경 혼 맥 형성을 통한 정치권력의 영향력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동시에 정치적 동물이다. 인간의 사회는 다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가 다수를 지배한다. 따라서 이 소수는 그들의 지배구조를 영속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파벌을 형성하게 된다. 파벌은 가까운 혈연끼리, 또는 같은 지역 출신이나 같은 학교 출신의 인맥으로 이루어진 공동이익의 결속체 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사건과 사건의 연속이며 사건은 곧 파벌과 파벌의 투쟁이다. 파벌은 배타적이며 개인의 힘 보다는 집단의 힘을 공동 이익추구의 수단으로 삼는다. 시대가 영웅을 낳고 영웅은 사건을 만든다고는 하나 한 두 사람의 영웅만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온 것은 결코 아니다. 공생공존 관계에 있는 지지세력, 이해타산으로 한데 얽힌 추종세력이 있음으로써 가능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인맥과 파벌은 존재한다. 우두머리가 바뀌고 이합집산을 거듭할 뿐, 파벌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다만 어떤 집단 안에서 파별과 파벌이 건전한 경쟁관계를 유지할 경우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파벌의 사리사욕만 추구할 경우 갈등의 골 이 더욱 깊어질 것은 자명한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인맥과 파벌은 역사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훨씬 두드러졌던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맥위주의 파벌의식을 필연적으로 비공식적인 이익, 즉 사리사욕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파벌의 공통점은 공직 또는 공권을 사당의 이익을 위해 남용한다는 데에 있다. 혈연, 지연, 학연 등 인맥을 고리로 형성된 파벌은 집단 속에 숨어 전체인 양 가장하지만 파벌이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공리공복이 아니라 사리사욕에 불과하다.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정치적 • 사회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파벌이 본격화 된 것은 고려 인종 13년(1135년)에 일어나 이른바 ‘묘청의 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때 김부식을 우두머리로 한 이른바 유교학파가 묘청 • 정지상 • 백수 • 김안 등 불교학파를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는데, 유교학파는 또 한편 사대주의 한학파에 개경파 였는가 하면, 불교학파는 국수주의 국풍파에 서경파이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당쟁이 조정을 장악한 사림 사이에 학연 • 지연 및 시국관을 같이하는 인맥끼리 파벌을 형성 발전됨으로써 임진왜란 • 병자호란 같은 미증유의 전란 중에도 해소될 줄 모르고 줄기에서 가지가 뻗듯 당파가 당파를 낳으며 덧없는 싸움을 지속하다가 마침내 조선 왕조의 망국에 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파벌 싸움과 당파 싸움이 불러일으킬 폐습과 해약, 그 역사적 교훈은 망각되고 특히, 오늘날에 이르러 5 • 16쿠데타 이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정치권력의 이해관계로 얽힌 잡다한 정 • 경 혼 맥 형성을 통한 사회계급은 가뜩이나 분열 지향적 파벌의식에 망국적 불신조장을 접목시킨 전환점이 되었다. 정경유착을 바탕으로 한 파벌의 존재는 우리사회의 결속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민족통일을 저해하는 병폐이며 암적 요소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오늘 우리 정치사회의 모습이다.

 

사회계급이란 본질적으로 계급이익의 극대화를 지향하므로 자본가 계급의 사회적, 정치적 연출 망이 되며 지본가 계급의 이익실현에 매우 중요한 하나의 계급적 지원이다. 자원동원이론(resource mobilization theory)과 연줄 망 이론(network thory)에서 각각 사회적 자원이라는 개념과 <연출 망〉이라는 개념을 빌면, 사회적 연출 망은 계급 분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연구대상이 된다. 그 연줄 망 이라는 사회적 자원은 두 가지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사회관계이며 다른 하나는 그 관계를 통해서 연결되는 권위에 수반된 자원인 것이다.(Lin, Ensel and Vaughn, 1981 : 395). 사회적 자원은 개인이 소유한 재화가 아니라 직접 • 간접적인 연줄을 통해 접근 가능한 지원인 것이다. 개인이나 집단이 얼마만큼 힘이 있느냐 하는 것은 곧 이러한 사회적 자원은 얼마만큼 소유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보다 힘 있는 사회적 연줄 망에 접근 할수록 그 개인이나 집단이 그 연줄로부터 도움을 받아 이익실현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라고 정의할 때, 설제로 한국에서 산업화 전략이나 정치구도에 있어서 정부와 기업이 갖는 긴밀한 관계를 고려한다면 기업인과 정치엘리트 간에는 모종의 끈이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재벌은 정치 엘리트와 혈연이나 지연 등의 귀속적 연줄 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가?

 

기업의 목적이 효율적인 경영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 하는 것이라면 왜 혈연이나 지연 등을 통해 정치엘리트와 귀속적 연고가 경영의 전문성보다 중요한가. 요약컨대, 한국의 자본가들이 정치 엘리트와 맺고 있는 혼맥 형성 과정을 통한 혈연과 지연 등의 엘리트 구성이나 권위가 엘리트 개개인의 재능이나 심리적 수준에서 설명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회가 처한 정치적, 경제적 구조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한국의 엘리트 기원은 일제시대 대지주 세력의 삼분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렇게 지주층이 분화된 상공업자, 정치지도자 및 지식 계급(관료 포함)은 미군정하에서 변질되어 간다.

 

정치엘리트는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공장 불하, 특혜 융자 등을 미끼로 하여 정치관료, 자본가를 육성하였고 지본가는 정치엘리트에게 정치자금을 기업화 하였다. 이렇게 정치가 • 기업가 그리고 관료는 삼각관계를 맺으면서 상호 보완적인 운명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이들은 해방 이후 2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하였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이전 한국의 재벌성장과 자본축적의 근거가 되었던 것은 귀속재산 불하와 급격한 인플레 하에서 정부의 특혜금융 그리고 원조물자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관료 독점성과 대외 의존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5 • 16 군사정권은 부정 축재자 처리를 통하여 경제적 개편을 단행하려고 했으나 군정의 처리는 변질을 거듭했고 환수금의 납부를 위해서 금융특혜와 외자 도입의 우선권이 주어졌다. 그리하여 한국의 독점 자본가들은 경제 개발이 시작되자 이에 참여하여 재벌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1965년 한일협정 • 1966년 월남파병 등과 외자도입법의 제정으로 인하여 독점자본은 강화되어 갔다. 즉, 5 • 16 이후 부정 축재자 처리는 재벌의 재편성에 불과한 것이며 초기 경제적 자립정책이 경제엘리트가 미성숙한 여건 속에서 무리하게 책정된 국내외 자본조달 계획을 바탕으로 크게 확대된 투자 계획이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치자 개방체제하에서 수출을 촉진하고 차관도입을 통하여 경제개발계획의 위기를 해결 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경제엘리트에게 여러 가지 특혜를 제공 하였으며 독점재벌을 육성하고 이러한 특혜제공을 통제함으로써 정치자금을 확보하였다.

 

이와 같이 경제엘리트는 정치적 특혜와 이로 인한 관료성을 그 특정으로 하고 있으며, 한국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자본가와 권력엘리트, 외국자본의 결합은 필연적인 구조적 요구였다. 경제엘리트와 정치 엘리트의 결합은 정권의 정통성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5.16 군사 정권이 부정 축재자 처리, 공화당 정권의 경제 개발 계획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 진 것이며, 정치엘리트와 경제엘리트의 이해관계와 사회경제적 지위 변동에 대한 우려가 일치한 것이다.

 

이러한 양자의 결합은 무리한 자본투자 계획과 이로 인한 외자도입의 증가라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경제개발 계획의 기본목표로 설정한 자립경제의 달성을 위한 기반구축과는 정반대로 경제개발 과정에서 외국자본과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다.

 

1965년도까지의 외자도입은 매년 2억 달러 정도이었으며 그 대부분도 무상원조였다. 그러나 한 • 일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1966년 이후 외자도입은 서서히 증가하여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을 경과하면서 70~80억 달러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동시에 외자의구성도 무상원조가 격감하면서 장 • 단기 차관의 격증이 두드러지는 현상을 초래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의 정치적 • 경제적 연줄 망의 결정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로써 그 자체가 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결국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아시아적 생산양식 하에서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주도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는 비교가 안 되는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국가가 은행을 완전히 국유화할 뿐 아니라 경제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것이 재계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래서 한국재계의 연줄 망에는은행이나 경제정책에영향력이지대한 정치인이나 행정 관료의 역할이 중요한 변수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국가가 은행 • 외자 등의 자금원을 장악하고 경제계획의 사업들을 기업들에게 하청을 주는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기업인들이 정부쪽에 연결망을 만들어 편의를 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에 국가기구의 관리자인 정치엘리트는 인기 없는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 엄청난 규모의 정치 자금원의 확보를 위해 기업과의 연줄 망 형성이 필요했다. 따라서 기업의 요구와 정치권력의 요구의 교환관계를 둘러싸고 매우 비정상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구조적 상황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요약컨대, 한국의 자본가들이 정치엘리트와 맺고 있는 연줄 망의 유형은 직접적 • 공식적인 눈에 보이는 줄은 거의 없는데 비해 비공식적 간접적인 눈에 안 보이는 줄은 대단히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즉, 자녀의 결혼이나 지연, 학연 등의 간접적, 비공식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연줄 망은 상당한 정도로 형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자본가는 이렇게 직접적 • 공식적으로 정부기관에 진출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만 정치권력에 연결되어 있는가?

 

첫째, 정 • 경 유착에 대한 국민의 강한 거부감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방법을 택했다고 보여 진다. 둘째, 정치권력의 폐쇄체제로부터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셋째, 한국재벌의 중앙집권적 구조 때문에 소유와 경영의 전권을 양도하고 정계로 이동 할 수가 없으며, 그러한 가부장적 구조 때문에 전문 경영인은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여 사회적으로 성장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넷째, 빈번한 정치적 소용돌이가 자본가로 하여금 정치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물론 자본가계급의 하부에서 오는 요인으로 기업이 정치권력과 직접 공식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반하는 강력한 사회적 저항이 존재한다는 부정적 속성은 1960년 4 • 19혁명 이래로 붙여진〈부정축재자〉라는 꼬리표가 반기업적 사회여론을 주도해 왔다는 고정관념과 편견들이 1960년대 이후 고속성장의 전략으로 채택된 정부주도와 재벌주도의 수출전략이 정치와 기업 간의 유착이 의심을 가중시키게 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경련 회장이 직접 언급한 대로 재계가 대표를 국회에 파견하기를 포기한 것도 정 • 경 유착의 사회비판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그 대안적인 방법이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을 사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군부와 관료가 동맹하여 국가기구를 독점하여 권력의 폐쇄체제 (closure system)를 형성 되였던 까닭에 자본가 계급은 이러한 독점적 폐쇄체제로부터 배제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군부와 관료의 폐쇄체제는 공식적 직위 독점권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녀의 결혼이나 개인적 관계를 통해 재벌과 간접적 끈을 맺는 것은 배제되지 않는 것이다.

 

기업인 자신이 아닌 제 3자를 통한 자녀나 가까운 친척의 결혼을 통한 간접적 연줄 망의 형태를 단적인 예로「주요정치인과 50대 재벌 중심의 인척관계」에 있어 한국의 정 • 경 혼 맥을 조사한 일요신문사의 조사에 의하면 권력과 돈은 소위 ‘출세’의 두 가지 지표로써 함축된다. 이 힘든 세상에 둘 중의 하나만 가져도 그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된다. 이를 더 강화하는 가까운 길은 무엇일까. 바로 ‘혼사’다. 권력을 가진 사람과 돈을 가진 사람이 끼리끼리 혼사를 맺으면 자연스레 그의 입지는 강화되고 신분은 더욱 상승됨은 물론 혼 맥으로서 이들은 모두 하나의 고리 속에 존재 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 • 사업상 경쟁자는 서로 직접 사돈이거나 한두 다리 건너 사돈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혼 맥을 연결하면 어떤 모습이 될까. 결론부터 ‘모두가 하나’다. 이들의 혼 맥을 잇고 또 잇다보면 모두 한 테두리를 형성, 얽히고 설기는 모양을 나타낸다. 즉, 방대한 ‘정 • 경 혼 맥’을 그리게 된다.

 

겉보기로는 ‘적’도 혼 맥 상으로는 ‘가족’이다. 전 • 현적 정치인 재벌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력 인사들의 결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끼리끼리 혼사를 맺고 알게 모르게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우선 전직 대통령의 혼 맥을 살펴보면 제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은 잘 알려진 대로 맏딸(소영)을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의 아들(태원)에게 출가시켜 최 회장과 시돈을 맺었다. 이는 지난 제 2이동통신 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요인이 됐다. 노 대통령은 또 아들(재헌)을 신명수 동방유량 회장의 맏딸(정화)과 결혼 시켜 두 명의 재벌과 혼 맥이 이어진다. 또한 김한수에 이른 혼 맥을 계속 잇다보면 국내 정경 혼 맥이 ‘황금라인’을 만나게 된다. 김한수→구인회(럭키금성 그룹 창업주)→이병철(삼성그룹 창업주)→홍진기(전 내무장관)→노신영(전 국무총리)→정세영(현대그룹 회장)과 같은 화려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특히 이 혼 맥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심각한 갈등관계에 있는 노 대통령과 정주영 국민당 대표의 혼 맥이다. 두 사람은 여러 경로를 통해 연결된다. 첫째가 노 대통령→김복동→박두병→구인회→장홍식(전 극동정유 회장)→정주영의 혼 맥으로 이어진다.

 

둘째, 구인회에서 허정구→김동조→정주영의 길, 또 세 번째는 김복동→김한수→구인회→장흥식→정주영의 길이 있고, 김한수를 거쳐 양택식→홍진기→노신영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정 • 경 혼 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교차로가 신춘호(농심 사장)이다. 그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형이다. 신 사장은 한쪽으로는 서성환 태평양그룹 회장과 연결,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정재문 민자당 의원→이종찬 민자당 의원의 화려한 혼 맥으로 이어진다. 또 한쪽으로는 박남규 조양상선 회장을 거쳐 김치열 전 내무장관을 만나 김종대 대전피혁 회장→신덕균 동방유량 명예 회장→노태우 대통령으로 연결된다.

 

신 사장은 또한 김진만(전 국회부의장)과 연결되면서 김상홍 삼양사 사장→김종규 전 서울신문 사장, 이철승(전 신민당 총재)으로 이어지는 유력 혼 맥을 맺는다. 정 • 경 혼 맥에서 또 하나의 관심 혼 맥이 김인득 벽산그룹 명예회장, 김 명예회장의 장남인 회철(벽산그룹 회장)의 부인인 허영자는 삼양통상 허정구 회장의 딸이다. 이 혼사를 통해 김 명예회장은 럭키금성을 비롯, 현대 • 삼성 등 대재벌 가문과 혼 맥을 잇는다. 그는 특히 박정희 대통령 집권 때인 지난 1972년 박 대통령의 형(박상희)과 사돈관계를 맺어 권력의 최고 상층부까지 혼 맥을 이었다. 둘째, 아들(회용 • 동양물산 사장)의 부인 박설자는 박 대통령의 질녀, 그녀는 또 김종필의 처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희용과 김종필은 동서지간, 3남인 희근(벽산건설 사장)은 이소형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호텔 그린파크와 메트로 호텔 사장인 이건형의 누이동생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김종필은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와 사돈관계를 맺으면서 화려한 혼 맥을 나타낸다. 김종필은 장녀(예리)를 이원만의 차남인 동보(코오롱 고속관광 사장)에게 시집보냈다. 이 혼사는 박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의 중매로 이루어져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원만은 재벌그룹 혼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아들인 이동찬(코오롱 그룹 회장)의 장녀(경숙)를 이효상(전 국회부의장)의 3남(문조)에게 출가시켰고, 4녀인 은주를 신병현(전 부총리 )의 외아들인 영철과 혼인시켜 전직 고위 인사들과 사돈 관계를 맺고 있다.

 

지금까지 거론된 유력인사들의 정 • 경 혼 맥도를 간접 연줄 망의 형태로 통계 분석해 보면 연줄 망의 특정은 역사적으로 한국사회의 정 • 경 혼 맥이 정권권역에 걸쳐 그 핵을 형성하며, 또 지연과 학연 등이 권력투쟁과정에서 비롯된 암울한 정치적 고정관념과 편견들의 고착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간접 연줄 망이란 A와 B가 사돈 간이고, B와 C가 사돈 간일 때, A와 C의 관계를 지칭한다. 결혼을 통해 A와 B사이에 직접 사돈관계를 맺는 것은매우 강한 연줄 망이 되는데, 또한, A와C 사이에 간접 사돈이 되어 약한 연줄 망이 형성되는 것도 한국에서 사회적 자본으로서는 충분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상기에서 이와 관련된 직업의 유형은 재벌 쪽과 정부쪽의 두 개의 하위 항목으로 나누어졌음을 할 수 있다. 정부쪽의 직업은 대체적으로 다섯 개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되었으며 직책은 전직과 현직을 다 포함한다. 특히 하나의 결혼을 통해서 두 개 이상의 권력 엘리트와 연결될 때는 각기 별도의 연줄 망으로 중첩적으로 계산되었다. 이에 의하면 각 재벌은 자녀의 결혼을 통해 다른 재벌과 2.7개의 연줄 망(1.9개의 직접, 0.7개의 간접)을 형성하고 있는데 중간층 권력엘리트를 포함해서 평균 4개의 연줄 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재벌과 사돈관계를 맺은 장 • 차관급 인사 8명이 퇴임 후 해당 재벌의 고급 경영인으로 임용되어 왔다. 이들 15개 재벌들은 자녀 및 친척의 결혼을 통해 한편으로는 타 재벌과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권력엘리트와 강한 연줄 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