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혁명. (부제: 국가통치사상학)_13/100회_지하경제권력.

 

 

4. 국가권력, 종교 형이상학의 정치적 혼융을 통해 지하경제에 미치는 영향

 

인간은 동물이다. 인간은 종교적 • 형이상학적 • 정치적 동물이다. 따라서 인간은 종교적 명상, 과학적 사고와 정치적 사색을 한다.

 

플라톤의 체계는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또한 정치적이다. 종교와 형이상학과 정치학은 플라톤의 사상을 구성한다. 이 세 가지 구성 요소는 플라톤 체계를 이루는 최소한의 것이다. 그리고 이 세 요소의 조화는 서로 때어 놓기 힘들다. 각각의 요소에 다른 두 가지의 요소가 개입된다. 즉, 종교에 형이상학과 정치학이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고, 형이상학 속에서 종교와 정치학은 그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종교와 형이상학은 정치철학 체계를 구성한다.

 

플라톤은 현실 속에서 그의 새로운 철학적 • 종교적 원칙에 입각한 새로운 국가 건설을 의도하였다. 이렇게 그의 정치사상에는 종교와 형이상학과 현실 삼자의 공동작용(Synergie)이 존재한다. 「티마이오스」에서의 형이상학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그의 우주론은「폴리테이아」에서의 공동체를 현실에 완전히 실현하고자하는 그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법률」은 어떤 의미에서는 플라톤의 대화편 중 진정한 정치 체제를 위한 유일한 대화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서두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플라톤에 있어서 종교와 형이상학은 정치적 개혁이라는 의도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그의 모든 대화편은 ‘정치적’이다.

 

플라톤 정치학에 있어 국가는 개인에 대한 선험적 존재이며, 국가 이성은 절대적인 것으로 등장한다. 제도와 법은 국가를 대변하여 개인을 국가에 접속 시킨다. 또한 플라톤의 국가도 형상이 그 존재 확인을 위한 것처럼 신에 의탁함을 볼 수 있다. 무정부주의와 이기주의는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를 부정한다.

 

이와 같이 볼 때 우리는 종교, 형이상학, 정치학이라는 세 차원에서 신이 전체성으로 인간이 개체성으로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제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형이상학 차원에서 보다는 종교와 정치학적 차원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나지만, 형이상학 차원에서도 비록 종교적 전체성과 형이상학적 전체성에 따른 관계가 불분명할지라도 신과 인간이 갖는 각각의 전체성과 개체성으로 상정됨에 대한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인간이 개별적인 것에 대한 인식의 주체이며, 판단과 인식은 오직 인간 이성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 차원에서 신성은 전체성이며, 인간성은 개체성이다. 그런데 인간성의 이중적 성격은 인간성과 신성과의 연계를 가능케 하므로 플라톤의 신은 인간성과의 연계 가능성을 인간 속에 남겨 두고 있다.

 

“만약 당신이 어떠한 조상신도 모시지 않거나 어떤 형식의 제사라도 지내지 않는다면, 간단히 말해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아테네 사람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 (「에우티데모스」, 302 bc).

 

신성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보존되어야 하며, 이것은 정치 공동체를 위한 변증론자(철학자)의 임무임을 플라톤은「폴리테이아」에서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플라톤은 국가의 형성과 유지를 선성에 의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아폴론이나 전통적인 신화가 적어도 그에게는 철학적 가치뿐 아니라, 국가정치에 대해 상징적 또는 실제적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 정치적 체계는 종교적 존재론에 의거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혈연 사회 속의 신인동형설(anthropomorphism)적인 전통 종교는 신을 인간생활의 법칙(Nomos) 또는 운명(Moira)으로 받아들이면서 신과 인간을 엄격하게 구별한다. 따라서 인간은 인간성의 형성과 사회질서의 유지를 자연(Physis)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들의 인간적 인 면과 인간들의 신적인 면은 서로 조화되지 못하고, 서로 별개의 것으로 존재한다. 개체성과 전체성은 디오니소스(Dionysos)와 엘레우시스(Eleusis)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종교와 사회(혹은 국가)는 서로 분리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국가와 가족 간의 관계에는 언제나 종교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종교가 이 둘의 공통적 요소이기 때문이었다. 국가의 종교는 기족과 부족의 종교를 근거로 형성되었으므로 그리스의 종교는 공동체와 공동체의 구성요소, 즉 가족 부족들과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자연철학자들과 소피스트들의 등장으로 특정 짓는 ‘인식의 시대’에 인간의 이성은 신을 분석하는 개인주의적인 종교를 성립시키는 것이다. 국가이성의 약화와 사회의 다원화로 세속화된 종교는 개인주의에 의해 비판을 받는다.

 

플라톤의 정치적 기초는 그의 지도자가 목표로 삼고 있는 종교와 형이상학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적 신과 종교적 신 사이의 문제는 정치철학에 그대로 반영된다. 정치학은 종교적 전체성뿐 아니라 형이상학적 전체성에 의탁한다. 한편, 우리는 플라톤의 정치학은 형이상학적 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이라고 언급 했었다.

 

정치적 전체성이 종교적 전체성의 의탁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직접적 의탁이며, 또 다른 하나는 간접적인 의탁 즉, 형이상학적 전체성을 매개로 한 의탁이다. 지도자가 철학가일 경우에 간접적 의탁이 나타난다. 아폴론에의 갈망, 국가이성을 위한 아폴론의 탐구, 신정정체를 위한 ‘미토스’,입법정신을 위한 ‘퓌시스’, ‘노모스’, ‘로고스’의 탐구가 그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도자는 종교적 명상을 목적으로 갖고 있는데, 이 명상은 과학적 사고보다 더 중요하다. 그것은 이상이 현실 속에서 실천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 신정정체 및 신법이 종교적 형이상학과 일치한다고 해도 이들의 구체화는 형이상학적 종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 주요 방법은 종교적인 윤리와 교육인 것이다. 국가를 윤리화시키고, 욕망을 억제시키고, 법률을 준수케 하기 위해서 종교적 윤리는 형이상학적 윤리보다 더 긴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시대에는 종교가 정권 위에 군림하기도 하고, 다른 시대에는 정치권력이 스스로의 위치를 신성불가침의 최상위에 좌정시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종교와 정권의 두 권력이 피 흘리며 처절히 대결 하기도 하고, 보기 흉할 정도로 서로 야합하기도 한다. 종교가 정권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정권이 종교를 권력의 시녀로 만들어 권력의 예속물로 전락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고대로 올라 갈수록 종교와 정치권력은 밀착되어 있었다.

 

6천 년 전의 정치와 종교에서 로마의 정권이 탄생하기까지의 4천 년이 그러했다. 유브라테스와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와 애급의 종교와 정치 문명, 인더스강과 황하를 끼고 번영한 인도와 중국의 종교와 정치문화의 타락이라는 끔찍스러운 역사의 거대한 유물들을 보면서도 현대인들은 종교가 인간의 정치 역사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너무나 무감각 하다

 

한 민족의 멸망과 정권의 몰락에는 반드시 종교가 역사를 오도한 흔적이 있고, 부패한 정권이 타락한 종교와 더불어 저지른 죄악의 역사가 있다.

 

인류 역사의 그 어느 시대에도 그 쇠퇴와 멸망의 원인이 종교의정치적 타락으로 말미암지 않은 일이 없다. 애급의 최후가 그랬고, 앗수르와 페르시아의 몰락이 그랬다. 히브리 민족의 흥망사는 곧 민족과 종교의 부패 사이다.

 

폴리스와 올림피아로 집약되는 헬라 문병은 폴리스라는 자유 시민의 혈연적 연대와 공동체로의 정치 사회 구조와 올림피아 제전을 통한 신앙 공동체의 종교 사회 구조가 복합되었던 민족 • 정치 • 종교의 상호 관계에서 인간과 선을 구별하지 못하다가 소멸되고 말았다.

 

세계사 속에서 정치권력의 구조의 대표적 상정이었던 고대 로마에서 중세 로마에 이르는 라틴 정치 • 종교 • 문화의 역사는결국종교와 정권이 서로 우위를 겨루는 엎치락뒤치락 으로 붕괴되고 만다.

 

후라이스커스 데 비토리아에 의하면 정치 사회인 국가는 합의에 의하여 만든 사회가 아니라 자연적 사회다. 물론 현실 국가가 적극적인 인간 활동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충만한 인간 생활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연법상 어쩔 수 없이 어떤 식으로든지 정치적 사회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권력 내지 정부가 국가의 본질이며 이것 없이는 공동선의 증진을 위한 시민과 그들의 활동을 유기적으로 통일시켜 나갈 수 없다. 이 권력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주인인 종교(하느님)로부터 나오지만 구체적으로 정부 형태나 정권 담당자를 결정하는 것은 시민들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루터에 있어서 종교의 본질은 질서 유지에 있어서 정치의 보조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루터의 국가이론 내지 권력이론은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위는 다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위를 거역하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것을 거스르는 자가 되고 거스르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통치자는 결국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벌을 대신주는 사람입니다."

 

루터는 성경에 기초하여 현세 군주의 권력을 옹호하면서 교황의 권력에 관한 성경 내용만은 외면한다. 즉,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라는 명문 구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권력이 성경상 근거가 없다고 하는 것은 너무 편의적이고 정치적이라고 하겠다.

 

루터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인들은 모든 법규에 대한 복종에서 해방된다. 다만 그리스도의 법규가 있을 뿐인데 여기에는 아무런 형식이 없고 주관적이며 그 내용은 신앙이다. 다른 모든 법규에 대하여 그리스도 교인은 매우 자유롭다. 루터는 그리스도교인으로 하여금 교회법에서 벗어나게 하려 하였고 동시에 도덕법규에서도 벗어나게 하려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교인이 자신의 주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며 자유를 강조한다.

 

그리스도교인이 모든 법규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구원의 견지에서이다.

 

완전한 그리스도교적 생활에서는 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모든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교인으로만 되어 있다면 군주도, 왕도, 칼도,법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진정한 그리스도교인은 매우 적다. 어쩌면 단 한 사람도 없는지 모른다. 죄악이 인류에 온통 침투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왕국 옆에 악인들의 정부인 지상의 왕국이 있으며 하느님의 섭리가 개입된다. 하느님의 심리는 법규와 무력을 통해 나타난다. 악인들의 세계에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엄격한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루터에 의하면 질서는 하느님의 섭리며 질서를 위한 무력도 역시 그 섭리다.

 

루터는 성경을 인용한다. “통치자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벌을 대신 주는 사람입니다."

 

루터는 군인의 직책과 무력의 기능을 강력히 옹호하며 사형집행인의 업무를 변호한다. “하느님은 칼을 매우 영예롭게 하여 그 고유의 질서라고 부를 정도다. 칼을 잡고 목을 베는 손은 인간의 손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이다. 목을 매고…목을 자르며 전쟁을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전쟁에서 어떤 방식으로 목을 베고 불을 지르고 공격을 하여 포로를 잡든지 고려할 필요가 없다…”세상은 복음에 의하여 통치되는 것이 아니다. 이 법규들은 십계명처럼 성서에 들어 있다.

 

역사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역사적 위기는 종교와 밀접히 관계되었던 것을 본다. 위기를 극복한 당대의 인물 역시 종교와 관련지어지고 불행한 역사의 결과 또한 종교로 말미암은 것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전쟁과 전쟁의 기간으로 역사를 구분한다. 그런데 고대로부터 전쟁은 거룩한 것으로 여겨지고 신적인 것으로 믿어져 왔다.

 

종교는 어떤 전쟁이든지 신성한 의미를 부여해 왔다.

 

전쟁은 민족과 민족의 대결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때마다 종교는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며 전쟁의 주체가 되기도 해왔다.

 

애급과 바벨론과 파사와 헬라와 로마에 이르는 고대의 역사는 모두 종교 전쟁사로 엮어졌다. 인도와 중국의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