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혁명. (부제: 국가통치사상학)_21/100회_정치자금.

 

 

2) 법 제도화 된 정치자금의 현황과 문제점

 

 

한국의 현실 정치에 있어 정치자금은 항상 수면하의 빙산과 같이 은폐되어 왔으며, 특히 오늘날 인구의 증가와 선거전의 확대 매스미디어 등 선거운동 매체의 발달 등으로 인한 선거운동 자금의 급속한 팽창은 자연히 그 비용의 조달을 거액의 기부에 의존하게 되고, 그 결과 선거자금이 정치에 대하여 부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정치적 부패 현상을 가져올 위험성을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병의 근원인 정치자금 조달은 「정치권의 구조적인 모순, 관행의 타파에 앞서 그에 합당한 법과 제도의 개선이 급선무」라고 일관되게 지적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른바 정치자금법의 경우 청정정치의 4대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정치자금 소요의 최소성, 정치자금 모금의 투명성, 정치자금 수지의 경제성, 정치자금 분배의 형평성 등에 있어서 많은 허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고찰로서 정치자금의 조달과 관련한 제 1공화국 이승만 정권에서 대표적 정치부패 및 부정사건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석불(重石弗)사건과 제 2대 대통령 선거를 들 수 있다. 이 사건은 제 2대 정 • 부통령 선거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당시 정부 보유불(保有弗)내지 은행불(銀行拂)로 불려 지던 중석불의 막대한 양을 14개 상사에 비밀리에 불하한 사건이다.

 

둘째, 국방부 원면(原綿)사건과 제 3대 대통령 선거를 들 수 있다. 이 사건은 제 3대 정 •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군의 활동용 침구와 방한복 제작을 위한 긴급 군수물자로서 미국 FAO(대외사업자금)로부터 도입한 시가 50만 불 상당의 원면을 시장에 방매한 사건이다.

 

셋째, 산업 및 농업 금융채권 사건과 3 • 15부정사건을 들 수 있다. 자유당은 1960년 3월 15일의 제 4대 정 •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을 연장하기 위하여 43억 환의 산업금융 채권과 24억 환의 농업 금융 채권을 발행하여 이를 담보로 막대한 정치자금을 유출하였는데, 이 사건을 산업 및 농업 금융채권 사건이라고 한다. 이중 국방부 원면사건과 같은 군사원조 물자의 유용을 통한 정치자금 조달 사건은 정치체제 변혁의 계기, 즉 5 • 16 군부 쿠데타의 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겠다.

 

5 • 16군부의 박정희 정권초기(군정기간) 이른바 4대 의혹 사건으로, 이는 중앙정보부(KCIA)의 설립과 공화당의 창당 및 1963년의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자금 확보를 위한 대표적 정치부패 사건이었다.

 

이 4대 의혹 사건은 1961년 5 • 16 군부 쿠데타 후 민정이양까지 발생했던 4개의 큰 의혹 사건으로서 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 자동차 사건, 빠징코 사건을 말한다. 현실정치의 반영 및 정당정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또한, 정치자금을 양성화함으로써 정치자금의 음성적 거래에 따른 정치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1965년2월9일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법률 제 1685호)이 제정 공포되었다. 전문 6조로 되어있는 이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은 산업 ․ 경제인 • 기타 일반인이나 단체가 정부에 정치자금을 기탁할 때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하도록 함으로써, 정치자금을 양성화하려고 하였다. 즉, 동법이 시행된 이후인 1966년부터 1978년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기탁된 정치자금이 모두 18억1천2백만 원에 불과한 것을 보더라도 양성적인 자금보다 음성적인 거래가 훨씬 많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법률은 정치자금의 기탁을 장려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음성적인 정치자금 거래를 방지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거의 사문화 되어버린 동 법령은 1969년 1차 개정, 1974년에 2차 개정을 거쳐 시행되어 왔으나 역시 실효적인 것은 못 되었다. 이후 1979년10월26일 18년 동안 집권한 박 대통령이 급서하자 한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의 막이 열렸다. 동년 10월10일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은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빠른 시일 내에 헌법을 개정하고 총선거를 실시할 뜻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동년 12월 6일에 통일주체 국민회의에 의하여 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 대통령은 동년 12월 8일에 긴급조치 제 9호를 해제하자 개헌 논의가 가능했다. 이로써 정부와 국회가 헌법 개정 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헌정 개정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갑작스런 정치적인 해빙이 몰고 온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1980년5월17일 비상계엄이 전국에 확대되고 일체의 정치활동이 금지된 가운데 국가보위 비상대책 위원회가 구성되고 헌법 개정 작업이 헌법 개정 심의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동안 최 대통령이 사임하고 전두환 대통령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당선되었다.

 

헌법개정안은 1980년10월23일 국민투표에 붙여서 새 헌법으로 확정되었고, 새 헌법 부칙 제 6호에 의하여 새 헌법에 의한 국회가 구성될 때까지 국회의 권한은 국가보위 입법 회의가 대행하게 되었다. 비로소 1980년12월 3차 개정을 맞이하여 구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을 전면 개정하기에 이르렀고, 전문 34조와 부칙으로 새로운「정치자금에 관한 법률」(3302호)을 제정하여 정치자금에 대한 규제는 모두 이 법률에서 수행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이 3차 개정 법률에서 정당의 보호․육성이란 차원에서 비로소 「국고 보조금 제도」와 「후원금 제도」가 신설 • 도입 되었다는 점이다. 동법은 6공화국의 4당제 하에서 여 • 야 합의에 의해 지난 1989년12월30일 또 한차례 개정 • 공포되었다. 이 89년의 4차 개정의 주요한 특징은 무엇보다 정당정치의 활성화 및 정치자금의 양성화를 위해 이제껏 형식적 운영에 그쳤던 후원제도의 현실화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 정치 자금법의 조항들에는 여전히 많은 모순과 문제점들을 그 자체에 포함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이러한 정치자금 관계법의 존속과는 무관하게 불법적 ․ 비공식적 정치자금의 만연과 정치비리 및 부패사건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기에서 밝혔듯이 기탁 기금제는 정치자금법이 1965년 제정된 이후 공식적인 정치자금의 조달원으로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며 정치자금의 제도화에 크게 기여하여 왔다.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기탁금은 “정치자금을 정당에 기부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이 법의 규정에 의하여 선거관리위원회에 기탁한 금전이나 유가증권 기타 물건을 말한다.” 고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 현실에 있어 이 제도는 그 운용 면에 있어 본래적 의의가 크게 변질 되었으며, 효과 또한 미미하였다는 점 또한 법 제도상의 규정이 지나치게 행정편의 위주의 관료적 절차를 요구하여 왔다는 점 등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이 기탁제도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1981년에서 1990년까지의 일반 기탁금(경제인 포함)의 총액에 있어 지정기탁에 대한 비지정기탁의 비율은 1%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지정기탁의 대상 정당도 집권당(민정당 및 민자당)에의 지정기탁이 일반기탁 총액 중에서 98.5%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이러한 정당 기탁금의 야당기피 및 여당 편중성향은 개선되지 않은 채 6공화국 들어와서 여전히 지속 •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임시국회 중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내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1989년 1월부터 1990년6월18일 까지 중앙선관위에 지정 기탁된 정치자금은 총 365건에 262억 7,694만 원이며 이 자금은 전액 구 민정당과 민자당 등 여당에만 기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권 돈줄…‘재계 별들 총집합’」이란 제목 하에 토요신문 1992. 12. 31일자 발표된 자료에 의거, 민자당 재정위원 명단에서 드러나듯 제 1공화국에서 6공화국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前) 정권과 유착된 경제인의 행태를 볼 수 있다. 이는 정경유착 된 고리가 끊어질 경우 정치재판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하에「정치의 필요악」인 정치자금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즉, 정치자금은 어느 정권에서나 필요 불가결한 은밀한 통치수단이고 불법의 주역은 통치권자로부터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여당편중 • 야당기피」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3년간 주요 정당의 총수입금액에 대한 정당 기탁금의 비율을 때, 민정당의 경우 정당 총 수입금액 중 정당 기탁금의 비중이 53%에서 74%까지 차지함으로써, 정당 운영에 있어 기탁금의 역할 및 비중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야당의 경우는 기탁금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이다. 따라서 야당의 입장에서는 기탁금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자금 관계법의 규정에는 국고보조금 제도에 대하여 “보조금이란 정당의 보호 ․ 육성을 위하여 국가가 정당에 지급하는 금전이나 유가증권”(동법 3조 7항)이란 규정 하에, 정당에 대한 총지원 규모를 “최근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의 선거권자 총수에 400원을 곱한 금액”(동법 17조 1항)으로 설정하고, 이를 예산에 계상하여 매년 분기별로(법정 배분비율에 따라) 각 정당에 균등 분할 지급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고보조금 제도는 앞서의 정당 기탁금만으로 활성화된 정당정치의 재정적 수요를 감당할 수 없고, 또한 “여부 야빈”의 현상심화에 따른 부작용이 한계가 되었다.

 

또한 후원회 제도로서 “자금(돈)은 정치권력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공통분모”라고 표현되는 바 그 이유는 이러한 자금은 그것 스스로는 제공할 수 없는 것들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현실 정치에서 야당의 후원회 후원금의 실태를 살펴보면 경제력(기업 및 돈)의 속성이 얼마나 권력 지향적이며 권력유착적 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1987년부터 1989년까지의 3년 간 민정당을 제외하고는 야당의 경우, 후원회 후원금을 통한 정치자금 조달은 전무한 실정에서 이 제도가 지니는 한계성을 실감하게 된다.

 

1989년의 정치자금법 개정 후인 1990년부터 시작된 후원회 구성과 관련하여 나타난 문제점을 고찰하여 보자.

 

첫째, 후원회 구성에 있어서의 극단적인 여당선호 및 야당기피현상. 지난 4월21일 정치자금법 시행규칙 개정 등 관계법령이 정비되면서부터 본격화한 후원회 구성은 11월24일 현재 중앙당을 거쳐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후원회 등록을 마친 국회의원이 모두 57명 이중 무소속의 서석재 의원과 야당(평민당)의 김봉욱 의원을 제외한 155명 전원이 여당(민자당)소속의원이라는 점이다.

 

둘째, 금권계보정치의 현실화의 가능성. 후원회 구성에 있어 개인 및 개업들의 유력정치인 선호 현상은 정치자금 양성화 시책과 맞물려 금권대부의 출현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는 개인 및 기업들의 후원회 가입에 있어 설령 여당의원이라 할지라도 초 • 재선 의원 및 영향력 없는 의원들에 대한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후원회 구성 및 기타자금지원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 당내중진 및 유력정치인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며, 당내 파벌주의의 등장 및 금권계보 정치를 조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셋째, 후원회를 통한 탈법적 로비활동의 가능성. 현 후원회 제도에 의하면 개인이나 법인이 복수의 후원회 가입이 가능하게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의 배경에는 1989년의 법 개정 시 집권당의 대기업 「독식」을 우려하여 복수로 후원회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자고 요구해 야당 안으로 관철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특정인이나 특정기업 및 특정단체가 특정목적을 가지고 다수의 의원들을 후원하는 경우, 결과적으로 로비활동의 합법화 및 제도화를 보장해주는 기회로 인식될 수 있겠다. 특히 주식회사 「태영」의 경우 민방 허가 시기와 후원회 가입 시기가 엇비슷해 바로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시되고 있다.

 

이밖에 정치자금 기부에 따른 조세감면 규정의 문제를 들 수 있는 바, “정치자금에 상당하는 금액에 대한 법인세 • 소득세 • 증여세를 면제한다.”는 규정에 따른 면세부분이 국민의 부담 부분이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적 정치 환경에서 대기업 및 경제단체들에 의한 정치자금 기부는 직간접으로 경제적 반대급부 및 반사적 이익의 보장 등이 이루어져왔던 경험적 사례를 통해 볼 때, 이중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한ㄴ 추정도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일반국민(혹은, 유권자들)도 이러한 정치자금의 혜택을 보는 수혜자일 수도, 또한 피해를 보는 피해자일 수도 있게 된다. 그것은 첫째로는, 엄청난 정치. 선거자금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인플레의 문제이며, 둘째로는, 금권정치에 따른 대기업, 재벌집단의 경제지배의 결과로서의 피해일 것이다.

 

따라서 정권차원의 정치자금의 조달과 관련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정권차원의 유지비용 및 그 비용의 소요 부문을 여하여 축소시키느냐」하는 점에서 그 개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겠다. 이 경우 그 방향의 주요한 내용으로서는 정치 체제의 탈 권위주의화, 정당내부의 민주화 및 제도화를 통한 활성화, 금권선거를 지양하는 명실상부한 선거공영제의 재정립, 경제 환경의 조성으로서의 금융실명제의 확립 등을 꼽을 수 있겠다.

 

3) 현행 선거제도에 있어서의 정치자금 개혁에 대한 유권해석의 법적 모순성

 

한국의 현실정치에 「빙산의 일각」일 뿐으로 여겨지는 지하 경제적 정치자금의 형태를 볼 때, 현행 선거제도에 있어서 공식화된 부문의 정치자금의 논의가 비록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비판도 제기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장기적인 제도적 변화에 우선하여 단기적인 차원에서 개혁에 대한 유권해석의 법적 모순성을 지적함으로써 이에 대한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들 수 있겠다.

 

한국의 현실정치에서 조달 • 배분 • 운용되어왔던 정치자금의 유형은 정치자금 관계법에 규정된 당비후원금 • 기탁금 • 보조금을 들 수 있겠다. 이 경우 당비는 “정당의 당헌 • 당규 등에 의하여 정당에 당원이 부담하는 금권 • 유가증권”등이다.(정치자금에 관한 법률3조4항). 후원금은 “정치자금법의 규정에 의하여 후원회의 회원이 납입하는 금권 ․ 유가증권 등”이며(동법 3조5항), 기탁금은 “정치자금을 정당에 기부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이 법의 규정에 의하여 선거관리위원회에 기탁한 금권 • 유가증권 등”이며(동법 3조6항), 보조금은 “정당의 보호육성을 위하여 국가가 정당에 지급하는 금권 ․ 유가증권”을 말한다.(동법 3조7항). 이러한 공식적인 정치자금원은 지난 1965년2월9일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법률 제1685호)이 공포 시행되어온 이후 1969년 1월의 1차 개정(법률 제 2619호), 1980년 12월의 전문개정(법률 제 3302호)을 거쳐 지난 1989년 12월30일 네 번째의 개정(법률 제 4186호)이 이루어져 시행되고 있다. 지난 1965년 동법이 공포 • 시행되기 이전에는 구 정당법 및 선거법에 정치자금과 선거비용 등에 관한 규정으로 형식적 운용을 해왔었고 이후 동법이 시행이후 사회 • 경제적 변화 과정에 발맞추어 발전적 제도화의 과정을 이루어왔다. 고는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가 성립되기까지 격동세월의 시대적 상황 여건 하에서 형성 유지되어 온 지난 정치자금의 조성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정치자금 개혁에 대한 유권해석의 법적 모순성을 지적코자 한다.

 

해방 후의 급격한 인플레이션 하의 특혜금융 등을 통한 자금지원은 귀속재산의 불하를 가능케 했고, 특혜금융-대출에서의 정부 통제는 결과적으로 반대급부로서의 정치자금 조달을 가능케 했다. 이 시기에 1공화국의 이승만 정권의 경우 자신이 취약한 정치 지지기반의 확보와 권력구조의 강화를 위해 정치자금을 필요로 하였고, 그리하여 항구적인 자금공급원의 확보에 전력하였었다. 이승만 정권에 있어 정치자금원은 일본 식민치하의 적산불하로 이권과 관료 • 경찰 및 각종 사회단체의 후원관계를 통한 초기의 자금조달에서, 중기의 각종 군사원조 및 경제원조의 원조물자 판매를 통한 자금조달로 변화하였다. 이후 환율의 평가절상정책 및 저금리의 금융정책과 관련한 자유당 과두 엘리트와 기업가들의 후원 • 수혜 관계 속에서 조달되었던 것이다.

 

1공화국의 경우 정치자금 조달과정에 있어 정당체계와 관련하여 특기할 만한 사항은 자유당의 역할 및 기능이다. 이기붕이 자유당의 실력자로 부상하면서 자유당은 국가 관료 기구에 침투하게 되고, 정치자금의 조달 및 기타 국가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당 관료 중심의 과두 지배 체제가 국가관료 기구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하게 되고 그 결과 국가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물론 정치자금 조달 과정에서도 자유당이 주도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3공화국 박정희 정권의 경우를 보면, 5 • 16이후 초기 집권과정의 시기에는 새로운 정치체제의 구축을 위한 새로운 조직기반의 창출과 그 운영을 위한 자금원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조직산업의 첫발은 중앙정보부(KCIA)와 민주공화당의 조직으로 이어졌다. 정치적 목적의 화폐개혁 및 예금 동결조치의 재정 통제 정책으로 야당 및 반대파의 자금원을 봉쇄하는 한편, 통화량 팽창정책 및 공화당 창당과 관련한 소위 4대 의혹사건 등을 통하여 비공식적 정치자금을 모집하였다. 박 정권은 집권초기 최소한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정당구조 기능 강화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중기로 가면서 정치체제 내에서 정당의 역할을 점차 축소시켰으며, 국가관료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고 관장되었다. 또한 정치자금의 조달원도 “정부에 의한 투자재원의 통제”라는 정책 기조에 의해 국가와 기업 간의 불균등한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 은행융자 및 차관도입과 관련한 지불보증 등에 의한 사례금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 3공화국의 정치과정에서 국가정책 결정과 관련하여 공화당의 정치자금 역할과 기능을 고찰하는 경우, 권력구조 및 권력관계의 변화에 따르는 막대한 권력 창출에의 비용-즉, 중앙정보부의 창출, 공화당의 창당 1962년 12월의 국민투표, 1963년 10월의 총선, 1969년 10월의 3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1971년 4월의 대통령선거 및 5월의 총선 등-은 보다 장기집권을 위한 정권차원의 유지비용 확장은 물론 금권선거에 필요한 막대한 규모의 정치자금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러한 금권선거 비용의 급증현상으로 4 • 19직후 1960년대 5대 국회의원 총선(7월29일)시에 “3천만 환(1978년 기준가 3백만 원) 쓰면 당선되고, 2천만 환이면 떨어진다.”는 사회통설이 1978년 “2당 1락(2억 쓰면 당선되고, 1억 쓰면 떨어진다.)”로 바뀌었고, 1988년의 13대 총선에선 “10당 8락” 혹은 “15당 10락” 등의 통설로 바뀌는 양태가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우리의 고비용 선거형태는 미국과의 비교에서도 두드러지는바,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지출비용은 국민 1인당 평균 약 2.2달러정도 지출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비해, 한국의 1987년 대통령 선거 지출 비용(여 • 야의 총합)은 국민 1인당 평균 약 1만6천 원(미화23불정도)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1인당 평균액으로서는 미국에 비해 10배 이상 많은 자금을 사용한다는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특히 파벌의 조성 및 확장 등과 관련한 정치자금의 문제는 점차 금권대부의 출현과 함께 향후 금권정치의 계보형성 가능성이 예고됨으로써 정치자금 개혁에 대한 실현 가능성이나 책임성이 처음부터 희박한 것들이기 때문에 현행 정치제도로서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의회에 있어서의 정치제도 입법행정 과정도 행정입법 • 여당입법 등이 무더기 입법으로 일괄처리 하는 행태적 의회의 수준을 볼 때, 이러한 입법결정 과정이 수의 대결로써 여당에 의한 극단적인 야당 적대현상과 야당에 의한 반대의 부정 일괄의 극한투쟁만을 초래하는 여건에서 금권선거의 정치행태를 근절하기 위한 법규제의 강화와 그 공정한 운영 및 제도화 관점 차원에서의 명실상부한 선거공영제의 재정립에 관하여 개혁에 대한 유권해석의 법적 모순성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