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혁명. (부제: 국가통치사상학)_22/100회_정치자금.

 

 

2. 3당 합당에 따른 문민정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모순성

 

지역성에 기반한 정당 체제가 이루어진 것은 정당들이 점차로 국민 대중의 욕구와 이해관계에 기반한 연계 구조를 형성해가면서 정당정치가 활성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당정치의 사회적 기반이 유독 지역균열 구조를 형성하고 있음은 지역균열의 사회경제적 구조와 정치권력의 지역주의가 상존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한국의 정당들이 형성 발전되어온 발생론적 과정과 정당조직당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지역균열은 연고지역이라는 집단정체감에 기초해 있으나 지역균열의 정치구조의 단초를 이루었던 6대 대통령선거에 있어서는 박정희 정권과 연고지역인 영남지역과의 제휴 관계로만 한정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영남출신이 지속적으로 정권을 장악하면서 집권세력과 영남지역 민간의 후원자 • 수혜자(patron-client)관계가 지속되는 한편 여타지역 정치 세력 중에서도 각 지역민과의 잠재적인 후원자 • 수혜자 관계를 구축함에 따라 지역대립의 균열 구조가 심화되게 되었다.

 

어쨌든 6대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나타난 지역균열은 보수 진보의 균열이 제도정치의 영역에서 배제되고 약화된 가운데 여 • 야 균열과 함께 정치 균열의 중심축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여 • 야 균열도 여 • 야 간의 강한 대립만큼 이데올로기적 차별성을 갖지 않고 있었으며, 여촌 야도 현상이 그것을 대변하였듯이 사회적 집단성이나 균열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지역균열과 여 • 야 균열의 이중적 구도 속에서 지역균열이 상대적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으며, 지역균열 구조가 여 • 야 균열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지역균열 구조와 정치행동에 관한 연구에서 파웰은 정치균열이 대체로 사회적 균열에 기초하지만 ‘순수한 정치적’ 균열 현상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정치사회의 균열구조는 형성되기도 하며 해체되기도 하고 또 재형성되기도 한다. 모든 정치사회에는 지배집단과 이에 대응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며, 이러한 대응구조는 특정의 역사적 계기에서 형성 발전하는 정치적 균열구조의 특성과도 무관할 수 없다고 하듯이 영 • 호남 균열 현상은「수혜지역=여당후보 연고지=영남」대 「피해지역=야당후보 지역=호남」이라는 구도 속에서 쉽게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당후보자의 지역연고가 정당 전반의 성격보다는 한 개인의 성격에서 비롯되고 있음은 한국의 정당(특히 야당)이 그 구조나 성격에 있어 제도화되어 있지 못하고, 나아가 정치체제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 권위주의 체제였다는 한국정치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 당시 야당의 형성과정을 볼 때, 지도세력 및 그 성격에 있어서 다 지역적으로 혼합되어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1970년대 이래 한국 야당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은 지역균열의 정당체계를 형성하는 결정적 게기가 되었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를 둘러싼 정치지도자의 분열이 정당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한국 정당의 취약 상 내지 특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정당이 제도화되어 있지 못하고 파벌에 따른 붕당구조를 이루면서 이합 집산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파벌지도자의 분열은 정당 분열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야당 세력에는 여러 파벌이 있어왔지만, 1970년대 초 제 7대 대통령 후보 지명전을 거치면서 김영삼과 김대중은 야당의 대표적인 양대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그동안의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야당 핵심세력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공작이 지속되는 가운데 많은 야당지도자들이 정치의 전면에서 사라지거나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이 두 사람은 집권 세력의 탄압에 대해 지속적 비판과 저항을 해오면서 오히려 야당 세력에 있어 카리스마적 위치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이러한 카리스마적 위치는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정치적 억압 상황에서 비롯된 ‘상황적 카리스마(situational charisma)’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또한, 이들의 상황적 카리스마는 그 정도에 있어서는 다를지라도 각기 이들의 연고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정당의 세력화는 연고지역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각 지역정치 세력화에 있어 중요한 변수가 되었고 과거 대통령 선거에만 나타났던 지역 주의적 투표형태가 국회의원 선거에도 이어져 지역균열의 정당체계를 구체화 시킨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동안의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정당의 제도화가 전반적으로 미약한 가운데 집권세력의 지역주의와 정치적 억압은 상대적으로 야당지도자에게 지역주의와 결합한 상황적 카리스마를 부여하게 되었고, 정당정치가 활성화되는 초기단계에서 이러한 카리스마에 기초한 정당 조직화가 용이하였으며 그것이 지역균열의 정당체제로 이어졌다고 하겠다.

 

결국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를 정점으로 집권세력의 영남지지 기반화 경향이 강화된 가운데 영 • 호남 간 대립에 의한 지역균열과 호남, 비호남의 지역균열, 그리고 야당지도자의 상황적 카리스마에 의한 파당이라는 복합적 정치균열양상이 나타나고,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사회 지역균열의 전형으로 존재한다.

 

이후 유신체제 하에서는 지배 권력의 선택을 위한 국민대중의 제도적 정치참여가 실질적으로 봉쇄됨으로써 지역균열의 정치구조 역시 표출될 수 없었고, 체제 • 반체제의 균열이 정치균열의 중심을 이룬다고 하겠다.

 

이런 경우 한국의 정당정치가 여 • 야의 정치적 경쟁에 의한 중앙 정치권력에의 접근이 불가능한 야권의 소수반대자는 구조적 심리적 소외와 차별의 집단이 되며 정치공동체에 대한 권력 창출의 기회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샷트슈나이더」(E.E. Schattschneider)교수의 말처럼「정당은 무엇보다 먼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조직적인 기도이며, 여기서 말하는 권력이란 정치의 통제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정당이란 정권획득과 유지의 수단인 선거에서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정강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구체화하려고 노력하는 정치 단체이므로 정당의 당면목표는 정권의 획득에 있으며, 정권의 획득 없이는 실제로 정당의 정견을 실현시킬 수 없다. 이와 같이 정당이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그 일차적인 목적이 권력획득에 잇다는 변증론적 정권창출을 지향한 한국의 정치사는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이합집산을 되풀이한 정당의 소장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정당의 돌출과 이의 명멸과정이 거듭되었음을 볼 때, 그동안 한국의 선거사에서 소선거구 다당 대표제를 채택한 이래 10년이라는 기간 뒤에 정당제도가 양당제 방향으로 향한 과정을 피상적으로 관찰하면은 선거제도는 군소정당을 탈락시키는 기능을 한 점을 제외하고는 양당제의 확립에 별로 공헌한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합당을 원하는 군소정당이 명분으로 내세운 범야 세력의 대동단결이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면 각 정당이 꼭 합당을 하여야 할 당위적인 요인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야당세력이 합당을 한 여러 요인 속에는 그 당시 선거제도가 소선거구 다수 대표제이기 때문에 합당을 하는 것이 국회 내에서의 의석수를 각 정당이 합당을 하지 않을 경우보다 많이 확보할 수 있으므로 야당들은 합당을 하여 결국 정당제도가 양당제로 형성되게 하였을 것이다. 이는 선거제도가 표면상의 변수로는 적용하지 못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깊은 관련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야권구도의 합당 성격 형태를 전격 배제한 김영삼의 3당 통합은 이현령비현령식의 변증론적 합당 개념을 초래한 의식전환을 유발시켰다.

 

결과적으로, 정당 체제의 성격은 여소 야대가 여대야소로 바뀌고 박정희 정권하에 지배세력과 5 • 6공화국 지배세력 및 야권세력이 통합되는 등 이데올로기 면에서도 변화하였지만 3당 통합 자체가 복합적 균열구조로 이루어진 4당 체제를 지역균열과 여 • 야 균열이 중첩된 구조로 단순화시킴으로써 오히려 정당체제를 통해 호남 • 비호남의 지역균열 구조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비호남기반의 다수 여당과 호남기반의 소수 야당이라는 경직된 정당대립 구도라는 모순을 재창출한 형이상학적 정치상황이다.

 

앞으로도 한국의 정당정치가 여 • 야의 정치적 경쟁에 의한 변증론적 발전을 지향하는 한 3당 통합이후 최근 광역의회 선거에 이르기까지 구축된 호남 • 비호남 균열의 정당체제는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비호남기반의 다수 여당과 호남기반의 소수 야당이라는 경직된 정당 대립 구도에서는 더욱 경쟁적 정당 체제의 수립 및 정권교체를 통한 정치발전이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현 단계에서 경쟁적 정당 체제의 수립은 야당의 강화를 의미하며 또 야당의 강화를 위해서는 야당의 조직 및 성격 그리고 야당 체제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야당세력 내에서도 호남 • 비호남의 지역균열 구조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것이 야당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즉, 지역균열 구조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강화가 필요하지만 야당의 강화를 위해서는 또 다시 지역균열의 극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사회 지역균열의 구조는 여 • 야 정치세력 구조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지속적 과제로 남는 것은 호남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해소이다. 그리고 최근의 헌법을 근간으로 한 정치 현대사를 추이해 볼 때, 우리의 기초적 헌법 역시 근대적 입헌주의 헌법의 「예」에 의거, 권력분립의 규정과 더불어 제40조에서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유추해성을 내릴 수 있으나 우리의 법구조가 그 현실적 정당성에 관하여 광범위한 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의 밑바탕은 곧 정당성이 취약하거나 아예 결여된 역대 정부와 대표성이 크게 약한 국회가 법령을 정립하여 왔기 때문이다. 제 13대 국회의 한 단면을 보더라도 실증 되었듯이 여소 야대의 4당체제하에서 여야가 비민주적인 법으로 추려낸 것이 147개였으며, 이중 137개가 고쳐졌다. 그러나 개정된 이 법률 또한 위헌 및 위법적 의사절차 내지 운영이 조금도 개선됨이 없이 어제고 오늘이고 우리의 입법과정을 유린하고 있음은 부인할 길 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입법과정을 유린하고 있음은 부인할 길 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국가목적과 헌법질서의 체계에 매일같이 축적되고 있는 법령이 순응적이고 조화적인가 하는 근원적인 판단이 결여된 가운데 이루어지는 입법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제 14대 국회의원 선거를 기폭제로 야기된 차기 대통령 선출 과정 차원에서 보여준 6공화국의 정치 위기와 갈등의 구조적 형태를 볼 때, 최고 의사 결정권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조차 자신의 존재를 가져온 민자당을 탈당하여 중립내각을 구성하겠다는 의지표명 자체가 헌법에 위배되는 정치적 불신을 조장하는 행위로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모순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Sextus Empiricus의 해석에 의하면, 인간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척도다. 왜냐하면,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것은 존재하며, 어떤 사람에게도 나타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역시 ‘각각의 인간이 지각하는 모든 것은 존재하며, 그에게 지각되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체적 인간이 척도가 된다는 해석에서부터, ‘어떤 사람으로부터도 지각되지 않는 것은 아무에게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모든 사람에 의해서 지각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존재한다.’ 는 해석을 내리면서, 인간 존재 일반에 대한 관계 속에서 존재와 비존재가 판명됨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척도” 명제에서 ‘인간’의 개념은 개별자로서의 의미에서 인간 일반의 의미로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개인적 지각 내용과 경험은 인간을 극단주의 주관주의에 빠지도록 하지만, 인간은 또 다른 경험 축적을 통한 시행착오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연관시킴으로써, 비록 완전한 모습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의 한도 내에서 대상적 실재의 인식에 접근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명제는 인식의 문제에 국한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명제에 나오는 ‘만물’의 의미는 인간사에 관련된 모든 일 즉, 인식의 문제를 포함하여 윤리, 도덕, 정치 전반의 특성과 일들에까지 적용된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일들에 대한 조정자로 입법자로서 또한 척도로서 이해될 수 있게 된다.

 

프로타고라스의 사상이 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혼란시키는 위험한 행상인의 철학이나 극단적 주관주의적 사상이 아니라 현실 인식에 입각한 건설적인 경험 철학을 구축하고자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를 우리는 인간 문화의 기원을 말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프로타고라스 편에 소개되고 있는 이 신화는 대략 다음의 내용으로 요약된다.

 

‘신들이 인간과 동물을 만들어서 밖의 세상으로 내놓기 전에, 신들은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에게 명하여 여러 동물들에게 제각기 알맞은 재질과 능력을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먹이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것들을 잡아 먹고 살지만 멸종은 되지 않도록 조치해 주었다. 그렇데, 에피메테우스가 그것들을 다른 동물들에게만 다 분배해 주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아무런 대책을 세워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프로메테우스는 신만이 가지고 있는 불과 기술적 지혜를 헤파이스토스와 아테네 여신으로부터 각기 훔쳐다 인간에게 줌으로써 인간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신성을 갖게 되었고, 인간은 재단을 쌓고 신을 섬기게 되었다. 그러나 흩어져 살던 인간들이 더 안전한 삶을 위하여 모여서 사회를 이루게 되었을 때, 이들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갖지 못했으므로, 서로 싸우고 충돌하여 급기야 파멸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때 제우스는 인류의 파멸을 염려하여 헤르메스를 내려 보내어 모든 인간에게 정의(dike)와 존중(aidos)을 골고루 나누어 줌으로써, 이 정치적 기술로 말미암아 인간은 질서를 유지하고 사랑으로 뭉치게 되었다.’

 

이 신화에서 프로타고라스가 의도하고 있는 주장은, 인간이란 자립해서 살기엔 결여되어 있는 것(ákóσμηov)이 많아서, 기술적인 지혜와 언어를 갖게 되어 결함을 보완하게 되었으나, 이러한 기술적, 실천적 지혜는 인간들 내부로부터의 위협을 막을 수 없기에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 그래서 그는 생존을 위한 기술적 지혜에 덧붙여 인간이 결속하여 높은 수준의 삶을 확보케 해주는 정치적 기술로의 ‘정의’와 ‘존중’의 윤리적 힘이 주어지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프로타고라스 철학 비판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그의 인식 이론이다. 프로타고라스는 그의 저작으로 알려진 ‘진리’ 혹은 ‘논변’(Aletheia, Kataballontes)이란 책의 서두에서, 그의 척학적 사고가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인간-척도설”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해석상의 문제가 있는 이 명제는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인간(anthropos)은 만물(chremata)의 척도(metron)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떻게 있는가(hoscstin)에 대한 척도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떻게 있지 않는가에 대한 척도다.”

 

플라톤은 이 명제를 인식이론과 관련시켜 테아이테스편에서(152b)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 “때로 동일한 바람이 불고 있을 때, 우리들 중에서 한 사람은 차갑게 느끼지만, 반면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게 느끼지 않느냐? 그리고 한 사람은 추위를 약하게 느끼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강하게 느끼지 않겠는가?”

 

테아이테토스 : “물론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러므로, 이 경우에 바람 자체가 차다거나 또는 차지 않다고 라는 말할 것인가? 아니면, 프로타고라스처럼 그 바람이 차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차고 그렇지 않는 사람에게는 차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인가?”

위의 인용에 의하면,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가 동일한 바람도 사람에 따라서 달리 느껴진다는 것, 따라서 자체가 차갑다거나 덥다거나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은 곧, 차갑고 차지 않은 상태가 전적으로 그것을 지각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주관에 달려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 말해서, 프로타고라스의 이론은 인간 각 개인이 동일한 인식 대상에 대해서 자신이 주관적으로 지각한 내용만을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주장이므로,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 161c 이하에서 여기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감각 이외의 어떠한 인식 수단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대상 세계에 대한 진리를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거나 인식할 수 없다고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의 의미를 극단적인 주관주의와 감각주의, 상대주의로 규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그의 사고를 위험한 발상으로 보고 그를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