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혁명. (부제: 국가통치사상학)_28/100회_혁명의 끝.

 

 

제 3 부 공산주의 모순이몰고혁명의 끝

 

제 1 장 공산화 이념의 창출배경

 

제 1 절 초기 사회주의로부터 마르크시즘의 창출

 

일찌기 인간들의 오랜 꿈은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없고 지배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가 없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란 이러한 꿈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이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선 인간 불평등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유재산제를 철폐하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유재산 제도를 성립시키면 빈부의 차이는 사라지고 인간의 평등은 실현된다고 믿었다.

 

이때부터 중세의 신분적 계급제도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싹트기 시작한 자유주의사상의 물결은 시민혁명의 원동력이 되었고, 그것이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경제적 자유주의로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때를 맞추어 발발한 산업혁명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은 극도에 달했다. 결국 당시의 상황은 소수의 독점 자본가를 탄생시킨 반면, 다수의 무산 대중을 만들어 내어 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낳게 하였다.

 

당시의 유럽 사회에서는 귀족은 귀족을 낳았고, 노동자는 노동자를 낳아 그 지위와 부가 상속되는 현상을 빚어내고 있었다. 또 노동자의 대부분은 노예와 별다른 차이가 없이 유년노동, 빈곤, 장시간의 노동, 나쁜 노동조건과 같은 노동력의 착취현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럽 사회에서는 차츰 산업노동자들의 노동 운동이 활발하여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라틴어의 ‘Communis’(공동 • 공유<共同 • 共有>)라는 말에서 공산주의(communism)라는 용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공산주의는 코뮨(Commune : 공동체)이라는 의미와 공유(Communaute)라는 뜻을 갖는다.

 

노동자들의 첫 번째 큰 운동은 1831년과 1834년 프랑스 리용(Lyon)에서의 봉기와, 1838년부터 영국에서 전개된 노동자들의 정치운동인「차아티스트」운동(Chartist Movement)이었는데, 이것들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만을 대두시킨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까지 제기함으로써 노동자들을 <계급으로서> (als Klasse)지적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혁명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불평등 관계는 분명히 공산주의 운동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특히 자본주의가 노동자의 문제 외에도 자본의 과도한 누적, 노동과 생산의 과잉, 공항, 대중의 궁핍화 등과 같은 갖가지 문제점을 나타내게 되자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국민들의 기대와 신뢰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유래된 공산주의란 말은 1830년 7월의 프랑스혁명 이후의 사회적 격동기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1840년대에 들어와서는 ‘사회주의’(socialism)라는 말과 함께 널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일찌기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해 보고자 한 것은 이른바「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였다.

 

당시에 공상적 사회주의의 중요한 발전 단계 이론적으로 지도적 위치에 있었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론가와 그들의 저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16~17세기의 초기 공상적 사회주의 :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3)의「유토피아」(Utopia), 캄파넬라(Tommaso Campanella 1568~1639)가 플라톤의「국부론」을 모방하여 쓴 유토피아 소설 「태양의 국가」(Der Sonnenstaat).

 

- 18세기의 공상적 공산주의 : 메스리어(J. Meslier 1664~1729)의「계약」(Testament), 모렐리(Morelly)의「자연법전」(Gesetzbuch der natürlichen Gesellichuft), 마블리(Gabriel Bonnet de Mably 1709~1785)의「입법에 관한 논문」(Traktat uber die Gesetzgebung)과 바베프(F.N. Babeuf 1760~ 1797)의「서민계급의 선언」(Manifest der Plebejer).

 

- 서유럽에 있어서 19세기에 전반의 비판 공상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 생시몽(Claude Henri Saint Simon 1760~1825)의「제네바 문서」(Genfer Briefe)와「조직자」(DerOrganisator), 푸리에(Charles Fourier1772~183「노동의 새로운 사회주의 세계」(Die neue Sozialistische Welt der Arbeit), 오웬(Robert owen 1771~1858)의「신 도덕세계에 관하여」(Uber die neue moralische Welt).

 

- 19세기 초 공상적 노동자공산주의(der Utopische Arbeiter Kommunismus) : 블랑키(Louis Auguste Blanqui 1805~1881)의「공산주의-사회의 미래」(Der Kommunismus-die Zukunft der Gesellschaft), 바이트링(W. Weitling 1808~1871)의「조화와 자유의 보장」(Garantien der Harmonie und Freilieit). 데자미(T. Dezamy 1808~1850)의「재산 공유의 법전」(Gesetzbuch der Gütergemeinschaft) 그리고 프랑스의 초기 공산주의자로 불리 우는 까베(E. Cabet 1788~1856)의「공산주의 신앙고백」(Kommunistisches Glaubensbekenntnis)과「이카리아 여행」(Voyage en Icarie), 등이 있다.

 

까베(Etienne Cabet, 1788~1856)는 토마스 모어의「유토피아」(Utopia, 1956)와 로버트 오웬의 저서를 읽고 그 영향 하에 1840년「이까리아 여행기」(Voyage en Icarie)라는 이상적 공산주의 사회를 공상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저술하였다. 토마스 모어의「유토피아」와 비슷하게「이까리아」에서는 모든 사유재산제는 폐지되고 생산수단의 완전한 사회적 공유와 철두철미한 공산주의적 생활양식이 실현된다.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공무원은 인민 투표에 의해 선출되고, 인민 투표에 의해 소환된다.

 

까베는 이 이상사회의 실현에 있어서 프랑스의 공산주의적 혁명가인 바뵈프(Francois N. Babeuf, 1760~1791: 공산주의의 선구자)가 주장한 폭력에 의한 정치권력의 탈취에는 반대하였다. 그는 이까리아 공동체를 수립하기 위해 국가의 원조를 얻으려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주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848년에 까베파의 일당이 신대륙 미국에서 꿈을 실현하고자 프랑스를 떠났고, 다음해 까베도 미국에 이주하여 이까리아를 세웠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 실험은 로버트 오웬의 인디아니주에서의 ‘뉴 하모니’(New Harmony)촌과 마찬가지로 실패하고 말았다.

 

텍사스, 뉴올리온스, 일리노이에서의 시도가 그러하다. 그는 1856년 실의에 빠진 채 센트 루이스에서 사망하였다.

 

이들의 공동적 사상 경향은 빈부의 격차라는 사회문제를 가장 중요한 중심과제로 보고,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있어서의 경쟁 원리 대신에 협동 원리 위에서 새로운 사회체제를 확립하고 빈부의 격차를 해소해 간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새로운 사회질서는 교육과 설득에 의해 실현되리라는 생각에서 계급투쟁을 부인하기에 이르렀으며, 도리어 자본주의 사회의 해악(해악)과 모순에 대한 비난 ․ 공격과 이상사회 건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사회주의는 통일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다양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으므로 마르크스는 그들을 <미래사회에 대한 공상적 묘사>라고 비난하였다.

 

마르크스의 혁명이론은 계급 투쟁을 혁명의 근본 수단으로 삼았는데. 이 계급투쟁을 통한 혁명은 처음에는 부르아 혁명이지, 최종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원래 가난하기 때문에 그들 자신과 처자를 살리려고, 갖고 있는 수단이란 노동력 밖에 없음으로 노동시장에서 가혹한 노동을 감수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들의 전 노동력을 발휘해도 생존의 최소의 수단(the barest means of existence)이상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직 생존인 희망인 이 계급의 해방은 ‘프롤레타리아 혁명론’ 안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즉, 프롤레타리아의 빈곤의 증가는 착취자에 대한 반란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우리의 이익과 목적이 충족될 때까지 폭력혁명 영구화를 제창하였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마르크스가 보는 혁명은 유물론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른바 물질의 생산방법에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두 요소로 설명되고 있다. 이 두 요소는 상호 모순의 관계에 있는데, 이 모순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함으로써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기반 위에 그는 인간의 역사를 원시적 공산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제, 그리고 미래의 사회주의제 등 다섯 단계로 나눈다.

 

상기에서 언급한 생산력이란 생산 주체로서의 인간과 생산대상으로서의 자연 및 생산 도구 등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과 사물들 간의 관계를 말하며, 생산관계란 인간이 공동생활을 하며 생산물 교환을 위하여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를 말한다. 인간이 수행하는 사회적 생산에 있어서 인간은 불가피하게 또한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정한 관계를 갖게 된다.

 

특히 생산력의 발달은 생산양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생산력이 충분히 성숙하면, 이것은 생산양식의 발전을 가져오며 이것은 다시 이에 대응하는 경제 구성태를 가져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이론이 나오게 된 동기는 역사의 단계에 있어서, 국가의 발생 계급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났고 국가의 기능과 목적은 폭력적 탄압기구이며 그 구성원인 부르아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착취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즉 국가는 여러 계급의 대립을 억압하기 위해 생긴 기구이기 때문에 지배계급이 국가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특수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그들의 법적 • 정치적 • 이데올로기적인 상부구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에만 도취한 나머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억압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결국 이때부터 두 계급간의 심한 모순과 갈등은 바로 변증법의 정(These)과 반(Antithese)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결국 합(Synthese)이 이루어져 사회적 진보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 등을 전제로 마르크스주의를 형성하고 있는 제 이론과 학설은 많은 선행이론과 학설을 수요하고 취사 • 선택하는 과정을 거쳐서 구성되고 체계화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3개 원천의 하나는 철학이다. 특히 독일 고전철학이다.

 

엥겔스는 여기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 독일사회주의자들은 생시몽, 프리에, 오웬의 자손일 뿐 아니라, 칸트, 피히테, 헤겔의 자손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고 했으며, 또 “독일의 노동자 계급운동은 독일 고전 철학의 상속자이다”라고도 말하였다.

 

그리고 “만일 독일 철학, 특히 헤겔 철학의 선행이 없었더라면 독일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결코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까지 하였다. 헤겔 철학은 마르크스주의 철학 형성에 있어서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헤겔과 함께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이론적 원천을 제공한 다른 철학자는 포이에르 바하(Ludwig Feuerbach, 1804~1972)였다.

 

헤겔 좌파에 속했던 그는「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 1841)을 썼다. 마르크스 • 엥겔스도 이 저서로부터 받은 감명으로 한 때 포이에르 바하의 사상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마르크스의 철학은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변증법과 포이에르 바하의 유물론을 초석으로 하여 ‘변증법적 유물론’, ‘유물론적 역사관’을 구성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3개 원천의 다음 하나는 경제학이다.

 

마르크스가 역사상의 모든 위대한 혁명은 궁극적으로 경제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우선 프랑스대혁명을 고찰하고 그것을 비판 관계에서 규명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혁명이 사회 • 경제적 영역까지 침투됨으로써 완전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데, 프랑스 대혁명(1867년3월18일~동년 5월 27일까지의 파리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세웠던 파리시 혁명정부)을 근본적으로 부르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으로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달성할 수 있는 정부형태로 간주하여, 이것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본모델(model)로 삼았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와 같은 주장은 국가가 발생하는 데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든가 기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요인만을 강조하게 되어 계급투쟁을 조장하여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유물론에 꿰어 맞추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요는 국가의 정의를 지배계급의 투쟁을 수행하는 기구의 일부분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국가정의 이론의 귀결은 정치제도 즉, 정치는 무력하고 경제적 실재를 변경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마르크스 사회의 궁극적 지주는 경제구조에 있고, 사회의 하부구조(substructure)인 경제제도가 항상 사회의 실질적 기반을 구축하고 사회의 상부구조(superstructure)인 법 • 철학 • 정치 • 종교 등의 여러 가지 제도는 하부구조를 기초로 하여 유물론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전제하에서 노동가치설과 잉여가치를 연구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이란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투입된 노동량 또는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 배경에는 영국 고전학파인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리카르도(David Ricardo, 1772~1823)등의 학설은 록크(John Locke, 1632~ 1704)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록크는 자연 상태에 있어 재산은 자연이 제공하여 주는 것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생존할 권리를 가진다는 의미로 노동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았다. 즉, 물건들의 효용은 물건에 소비된 인간의 노동소비에 의존한다고 하며, 한 물건이 다른 물건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인간의 노동을 더 많이 들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재산의 가치는 노동에 있는 것으로 보고 사유재산제도의 정당성을 역설하였다.

스미스는 국부론 서문에서 모든 국민의 어떤 기간의 노동은 그 국민이 해마다 소비하는 모든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을 본원적으로 공급하는 자원(fund) 이며, 그 필수품 및 편의품은 항상 그 노동의 직접 생산물이든지 또는 그 생산물로써 제 국민한테 구매해 온 물품이다. 라고 하여 부와 가치의 근본을 노동에 있다고 생각 하였다.

 

다시 설명하여 어떠한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으나 그것을 자기 자신이 사용 또는 소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다른 상품과 교환하려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상품이 그로 하여금 구매하거나 지배할 수 있도록 해주는 노동량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노동은 모든 상품의 교환가치의 척도라고 정의한다.

 

이와 같은 스미스의 노동에 대한 이론을 한층 더 발전시킨 것이 리카르도 였는데, 그는 상품의 가치는 생산에 필요한 상대적 노동량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설(theory of surplus value)은 노동가치설(labour theory of value)범위 내에서 자본가이윤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에게 그 생산된 상품의 전체 가치보다 적게 지불하는 방법 이라고 말한다. 즉,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그가 노동한 시간과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판단에 의하면 자본주의 생산의 궁극적 목적은 자본을 최대한으로 증식시키는데 있었. 즉 잉여가치를 최대한으로 획득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착취해야 하는데 그 최대한의 방법은

 

첫째, 노동시간을 연장함으로써 생기는 잉여 가치를 이용하는 방법과, 둘째는 노동력 자체를 재생산해 내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필요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기계를 생산과정에 도입하고 분업을 더욱 세분하여 노동의 생산성을 제고로 생기는 잉여가치를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마르크스는 이상과 같은 잉여가치라는 전제 위에 다음과 같은 법칙을 전개해 나간다.

 

첫째, 자본 축적의 법칙(The Law of Capitalist Accumulation),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자유경쟁에 의한 자본가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기들끼리 경쟁하여 보다 많은 상품을 생산하려는 욕망에서 기계와 설비를 마련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자본을 축적한다는 것이다.

 

둘째, 자본 집중의 법칙(The Law of the Concentration of Capital), 첫째의 법칙에 의해 중산계급이 몰락하여 중 • 소 자본가들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게 됨에 따라 이들은 자본가로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자본을 집중시키는 카르텔(Cartels)이나 트러스트(Trust)의 형태로 독점화를 필연코 초래한다는 것이다.

 

셋째, 빈궁체증의 법칙(The Law of Increasing Misery), 이것은 자본가들이 보다 많은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기계화를 촉진함에 따라, 즉 기계화(불변자본)가 노동(가변자본)에 비하여 훨씬 증가됨으로써 마르크스는 오히려 자본가 입장에서는 이윤의 저하가 온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자본 총액의 견지에서 본다면 가치 증식의 원천으로써 움직이는 부분이 적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잉여가치율이 증가하면 이윤도 증가하거나 또는 그대로 머물러 있음을 전제한 것이다. 이에 비해 자본가는 그들의 속성에 따라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방법과 자본가 자체로서 존속하기 위해 기계화나 설비를 개선하면 할수록 이윤의 원천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저하된 이윤을 되찾기 위해 자본가는 현재 남아있는 노동자를 혹사하고, 또한 초과노동을 시킴에도 불구하고 겨우 생명유지에 필요한 임금만 주기 때문에 노동자의 생활은 더욱 빈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설은 이윤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는데, 노동가치설을 전제로 수립된 이론이므로 노동가치설이 경제이론으로서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잉여가치설의 성립 근거가 상실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농업경제에서 구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은 모든 상품에는 그것에 내재하는 교환 가치가 있으나 교환 가치로 볼 때에는 단지 양을 달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교환가치의 실체인 상품가치의 척도는 노동량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가치론의 근본 명제이다. 이론상 상품가치의 형성에 있어서 노동 이외의 생산요소의 역할을 무시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3개 원천 중의 마지막 부분은 사회주의, 특히 프랑스 사회주의이다.

 

마르크스는 프랑스의 생시몽, 푸리에 뿐만 아니라,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 1809~1865), 블랑끼(Louis Auguste Blanqui, 1805~1881), 바뵈프 등의 정치사상과 폭력혁명의 이론 등을 배웠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있는 자와 없는 자)으로 한 사회를 2분화시키고, 양 관계는 대립관계에 있으며,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은 그들의 생존권을 위하여 자본가 계급에 대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본질에 있어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간주되지 않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국가는 자유를 내세우는데 이 자유는 모든 시민들이 평등한 것으로 간주되고 모두가 얼마나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가에 관계치 않고 법 앞에 평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즉 국가는 말하자면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상인과 제조업자의 소유권을 인정했는데, 이것은 재산을 소유한 자들을 위한 자유이며 꾸준히 빈궁화된 무산자는 영원히 빈궁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조건하에 재산 없는 노동자들과 일하는 농민대중의 철저한 복종에 기초한 자유이다.

 

따라서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국가가 보편적 평등과 자유를 주장하나 불공평한 상태에서의 유산자의 착취가 있는 한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와 평등은 거부될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계속 유지하려는 이 기계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설명 하였다.

 

국가는 한 계급에 대한 다른 계급의 압제기계, 한 계급 영구복종토록 유지하려는 기계이며, 이 기계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었다. 여기서의 계급투쟁론은 ‘계급투쟁은 이 세계가 존재하는 한 불가피하며, 계급과 계급은 전반적으로 긴장상태에 있으며, 그러므로 계급 간의 투쟁은 화해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계급투쟁론은 일종의 선동론이며, 중간계층을 무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부계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이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투쟁형성기는 엥겔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utopian socialism)와 구별하여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체계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서구 선진국중심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론이라고 할 마르크스주의는 러시아인인 레닌에 의해 후진국 러시아에서 적용되고 실천되는 과정에서 당 중심, 즉 공산당 중심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 이데올로기’로 굳어졌다.

 

레닌에 의하면 러시아에 있어서 볼셰비키의 지배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현이라고 보았고, 그 실현의 핵심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한 국가의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폭력혁명을 불사해야 한다고 하였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되면 프롤레타리아만이 정권을 장악하고 지배계급을 구성하여 중요 생산수단을 국유화 내지 공유화시키고, 구 지배계급인 자본가 계급들이 다시 정권을 잡을 능력이 없도록 무력화 내지 제거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혁명이든지 혁명 후의 사회적 무질서를 질서로 전환하는 데는 힘이 필요한 것이고, 이 힘의 필요성을 레닌은 인정하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의한 정치를 인정하되 프롤레타리아 전부가 국가를 다스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짧은 시간 내에 질서를 정리하여 계급 없는 공산 사회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공산당 독재로 대치시켰다.

 

그래서 그 공산당은 소수에 의한 관료적 독재가 되어 그들의 정권 유지에 갖은 탄압과 동원을 행하지만 그들은 지금도 과도기에 놓여 있는 것이고 그 과도기가 언제 끝날 것이라 공식성명 하나 없는 것을 보면 볼셰비키에 의한 폭력 혁명은 단지 권력쟁취를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룩셈부르크(Luxemburg)는 소련의 일당독재를 소수의 몇몇이 지배하는 과두제 독재정당이라고 칭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레닌주의(현대 공산주의)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부터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어서의 유일한 지배 형태이다.

 

여하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 이론이자 그 수단이며 무기인 마르크스-레닌주의(공산주의)는 사상이론 체계와 정치사회 체제 및 혁명적 실천운동 등 세 가지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론과 체제와 실천의 삼위 일체적인 원천을 바탕으로 하여 마르크스주의의 골격은 정리되고 구성부분이 형성되었다. 즉, 이는 변증법적 유물론, 이를 사회와 역사분야에 적용시킨 사적 유물론 또는 유물사관, 정치경제학 그리고 계급투쟁론, 폭력혁명론과 프롤레타리아독재론 등을 포함한 정치이론이다.

 

결론적으로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적용능력을 잃어버린 지난 시대의 사상이론이며, 19세기에 낳은 사회적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편적 혁명이론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너무 확대 해석함으로써, 원래 극우나 극좌를 싫어하고, 오히려 극우나 극좌를 중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중산층이 결여되어 있어, 오늘날 아주 위험스러운 상태에 있다고 할 것이다.

 

소위 마르크스의 혁명이론은 러시아에서 1917년 10월의 볼셰비키(Bolsheviki)혁명 후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마르크스의 이론을 계승한 레닌 역시 마르크스의 이론을 많이 수정했거나 뒤엎기도 하였다.

 

이것을 ‘마르크스주의의 창조적 해석’(the creative interpretation of Marxism)이라고 변명했으나 마르크스와 레닌 사이에는 많은 모순점과 상이점이 있다.

 

스탈린 시대에 이르러 소련이라고 하는 하나의 강대한 국가를 위한 관제 또는 관인 이데올로기로서 국가교의(state doctrine)로 변질 • 전락함으로써, 현대의 ‘강권적 •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이며, 폭력혁명 • 계급투쟁 •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골간으로 한 전투적 • 광신적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하였다.

 

따라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사상이론이 아니라, 철저하게 당파적이고 목적적이며 공리적인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간혹 젊은이들을 일시적 • 충동적으로 사로잡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허위의 매력’(fascination of fallacy)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르크시즘은 오늘날 전혀 무용하고 완전히 사라졌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선진 자본주의가 아니라, 주로 후진지역에서 상당 위력을 갖고 있다. 아직 중산층이 형성되지 못한 후진국에서는 마르크스의 망령이 살아있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아시아 • 아프리카 • 라틴아메리카 등의 신생국은 정치적으로독립했으나, 경제적 자립을 이룩하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