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혁명. (부제: 국가통치사상학)_29/100회_혁명의 끝.

 

 

2 절 변증법적 유물론과 유물사관의 비판적 고찰

 

1. 변증법적 유물론

 

영국은 원래 패전병 또는 대륙에서 살기 힘든 민족들이 몰려들어 국가를 형성하였으나 토지와 기후조건 및 인구에 비하여 여타의 나라보다 농업의 자급자족이 어려웠다.

 

14세기 이후 플란더스 지방의 양모 공업의 발전은 그나마 농업에 종사하는 많은 농민들을 강제로 추방하는 종획운동(Encloused movemet)이 일어나 많은 농민이 노동자로 전락하는 변혁시기를 당하였고 시민계급의 대두와 함께 봉건적 지배계급을 물리치고 정치권력을 장악한 이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가 형성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산업혁명이 발생하여 자유경쟁 및 영리주의 결과 상품생산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부도 급격히 증가하였으나, 실업과 빈곤으로 최저 생활수준을 탈피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기계가 도입되었음에도 사회의 부에 대한 불평등 내지 사회악이 어떻게 하여 나오게 되었는가를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규명하고 치유하려는 대안이 무수하게 쏟아져 나왔다.

 

곳드윈(William Godwin, 1809~1865), 바쿠닌(Michale Bakunin, 1814~1876), 크로포토킨(Peter Kropotokin 1842~1891)등의 무정부주의자(Anacchist)들과 벨덤(Bentham), 밀(J.S. Mill)등의 공리주의자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신디칼리즘(Syndicalism)등의 주의 • 주장이 쏟아져 나왔고 또한 생시몽(Saint-Simon, 1760~1825), 오웬(Robert Owen, 1771~1858), 푸리에(F.M.C. Fourier, 1772~1837) 등의 이론이 나왔다.

 

이와 같은 많은 이론들 중에 병든 자본주의를 고치려고 하는 이론들 가운데 하나가 사회주의이론이며 이 사회주의이론 중 공장 노동자를 토대로 하여 특히 도시 임금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과격 사회주의자 칼 마르크스(Karl Marx)이론이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선 헤겔(Hegel)철학에서 도출된 변증법과 포이앨 바하(Feuer bach)의 유물론을 이해하여야 한다.

 

변증법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디아레틱로써, 그 용어자체는 토론 및 토의라는 그리스어로서 토론하는 과정에서 마음속에 내포된 모순을 폭로시킴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일종의 토론방법이며, 소크라테스(Socrates)는 민중의 무지를 폭로하고 깨우치는데 사용했다. 이것이 그 후 독일의 관념사상과 함께 헤겔(Hegel)이 철학적 방법으로 사용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헤겔의 역사철학에 의하면 세계사는 본질적으로「절대이념」곧「세계정신」의 자기발전의 과정이다. 보다 낮은 곳으로부터 보다 높은 곳을 향한 자기 전개로서의 역사 발전은 헤겔 논리학의 유명한 창안인「변증법(dialectics)」의 형식을 거쳐 진행된다. 그의 변증법은 역사뿐만 아니라 사상, 논리, 사유 등 모든 의식세계의 변화 방식을 지배하는 일반 원칙이다.

 

헤겔의 변증법적 근본사상은 첫째, 우주의 모든 조재는 정적인 상태에 있지 않고 동적인 상태에 있다고 보며, 둘째 그 이유는 한 개의 존재는 반드시 존재할 수 없게 하는 반대 요소를 내포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을 살 수 있는 요소와 죽을 요소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변화는 처음에 양적인 변화에서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질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헤겔(Hegel)은 전 우주과정의 생명은 동적인 상태에 있으며, 모든 관념(정)은 대립되는 관념(반)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부정되며 정과 반(反)의 투쟁에서 합이 생성되는 것이고, 합의 생성과 동시에 그것이 정이 되어 이러한 정(Thesis)→반(Antithesis)→종합(Synthesis)의 순환과정이 쉬지 않고 전개된다는 것이다.

 

헤겔(Hegel)에 의하면 우주의 유동 • 생성케 하는 본원적 실재는 세계정신(Weltgeist) 또는 이념(Idea)과 로고스(logos)라고 하며 이들 정신은 정적(static)이 아니고 동적(dynamic)이라 하여, 이들 절대자 또는 로고스가 변증법에 의하여 계속 변화를 일으킨다는 즉 세계사의 발전변화는 이 세계정신의 자기 발전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헤겔의 변증법은 간단히 말하여 절대정신을 바탕으로 한 대립 • 통합의 이론이요 또한 기존하는 것에 부정과 새로운 것에 창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그의 본질이나 정신은 플라토(Plato)의 이데아(Idea)처럼 자체운동(self-moving)이요 자기 창조력(self-creating)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헤겔의 논리 전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법칙을 내용으로 하여 구성되고 있다.

 

첫째는 「질량의 법칙」이다. 양은 누적을 속성으로 하는데 양의 축적이 계속되어 어떤 수준 이른바 질량 관계의 결정점에 이르면 그 양은 돌연히 질의 변화를 초래하며, 새로이 창출된 이질은 다시금 양으로서의 축적 활동에 계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질량의 법칙은 공산주의자들의 돌연한 혁명에 의한 역사 도약 현상의 해명에 동원된다.

 

둘째는 「대립 통일의 법칙」이다. 정신과 자연을 포함한 모든 현상과 실재는 그 자체 내에 반드시 모순되는 대립물을 잉태하고 있으며, 이 대립물은 발전한 후에 일정한 과정을 지나 다시 통일의 길을 밟는다.

 

이러한 철학에 있어서 특히 형이상학(metaphysics)의 문제에 있어서는 우주의 근본을 정신과 물질적으로 분류한다. 여기서 정신을 본원적 실재로 하고, 물질은 정신에서 파생된 존재라고 할 때 이것을 유심론이라 하고, 그와 반대로 물질을 본원적 존재라고 할 때 이것을 유물론 이라고 칭한다.

 

포이엘바하(Feuerbach)는 기독교본질론(Essence of Christianity)에서 헤겔의 절대자(logos, idea)에 대한 유심론을 공격하여 절대자 대신에 거꾸로 인간을 그 자리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포이엘 바하는 신은 단지 인간의 원형(Prototype)이요, 이상(ideael)일 뿐 그 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인간은 신과 같이 되어야만 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와 같은 포이엘 바하의 유물론 사상에 따르면, 우주에는 첫째, 인간과 자연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신이란 인간의 반영에 불과하며 따라서, 신이란 인간의 사상적 제조물이다. 셋째, 종교는 인간이 마음 속에서 꾸는 꿈의 일종이다. 넷째,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있어서 물질이 주체이고 정신은 종속이다. 다시 말해서 신은 자기 소외상태(his self alienation)에 있는 인간이며, 또한 인간이 존재이며 신은 생각이다(man is the being God, the thought). 따라서 인간이 주어이고 신은 술어라는 것이다.(man is the subject, God, the predcate).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무엇인가?

 

물론 마르크스(Marx) 자신은 헤겔이나 포이엘 바하의 변증법과 유물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자본론 제1권 서문에서 말하고 있으나, 그의 이론 전개는 헤겔의 변증법적 공산주의 유물사관에 그대로 답습되었다.

 

이를테면 미래공산 사회를 향하여 끊임없이 전진해 가는 과정이 역사라고 한다면 인간사회에 그러한 발전적 변화를 가져오는 원인으로서의 계기는 무엇이며, 또 그 발전은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는가? 라는 질문과 관련된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세계관에 기초하여 재화와 물질을 만들어내는 생산양식의 변화가 역사 발전과 사회변동을 가져오는 직접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규정한다.

 

생산양식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두 요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 양식의 변화란 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생산관계의 교체를 의미한다. 위에서도 설명했거니와 공산주의 유물사관은 역사의 발전동기로서 생산양식의 변화 외에 계급투쟁을 내세우고 있으며, 그의 발전 방법으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 충돌 작용은 물질세계 곧 경제영역의 현상으로 인간사회에 변화를 초래하는 원인은 될 수 있으나, 그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는 될 수 없다.

 

공산주의는 인식론보다 실천론이 중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발전동기로서의 원인 분석보다도 발전 동력 주체와 그 주체적 작용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생산양식 변화의 현실적 인간사회에로의 전화 선상에 계급투쟁 이론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계급이란 본래 출생에 의하여 결정되는 봉건제도 하에서의 신분과 같이 세습적 사회 지위를 의미하는 성격이 강하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 경제제도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으로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 설에 따라 중세봉건사회의 붕괴 이후에 나타난 자본주의 사회는 출생에 의한 신분의 타파와 세습적 사회지위의 철폐를 중요한 특색으로 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자본주의 사회 내에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유산자, 무산자는 재화의 유무 다소에 의하여 결정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우연에 의하여 상호교체가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이다. 특히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공산주의 팽창 사에서 볼 때, 현재 소련을 위시하여 지구상에 나타난 모든 공산국가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계급투쟁의 결과로 공산주의화된 것이 아니라 계급과는 전혀 무관한 직업적 패권 집단의 전쟁에 의하여 적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인류역사가 계급투쟁이라는 공산주의 계급 투쟁설 대전제의 투쟁사를 검토 해 볼 때, 전쟁이란 거의 민족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종족적 국가적 집단의 흥망성쇠의 한 현상이거나 아니면 종교적 신앙의 마찰 과정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인류사회의 역사는 모두가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그의 세계사 해석을 빌지 않더라도 역사상의 진보를 파악하는 마르크스 사관의 한 지도 원리였다.

 

공산주의 계급 투쟁설에 의하면, 인간사회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여 재산을 축적한 유산자 계급과 노동력 이외에는 생산수단을 전혀 갖지 못하면서 그 노동마저 착취당하고 있는 무산자 계급으로 나누어진다.

 

유산자 계급은 자본 축적을 위해 권력을 지배하여 상대계급을 착취하기 때문에 지배계급이 되며 무산자 계급은 지배 권력의 대상이 되는 피지배 계급으로 갈수록 열세화 된다. 이해관계가 상반된 이 두 계급은 지배 권력과 생산수단의 소유를 가운데 놓고 계급 간에 투쟁을 전개하는 데, 이 계급투쟁에서 마지막 승리는 피지배 계급인 무산자가 차지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새로운 생산관계의 출현과 더불어 역사는 한 단계를 도약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와 같은 계급투쟁은 계급 미분상태 하에 있었던 원시 공산사회를 제외하고는 인류역사를 발전 시켜온 원인이며 역사 발전과정을 지배하는 하나의 법칙으로서, 중세봉건사회에서 자본제 사회로 넘어오면서 더욱 가열되고 첨예화되어 마침내 인류역사상 마지막 전개되는 계급투쟁이 벌어진다. 자본주의사회의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지를 패배 • 파괴시킴으로 하여, 자본제적 생산관계의 소멸과 함께 계급과 착취 현상은 인간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계급 없는 미래 공산사회에서 만인은 착취함이 없이 또 착취를 당함이 없이 물질의 풍요를 영원히 구가한다는 것이다.

 

결국 계급 투쟁설은 이론에서 머물지 않고 혁명 방향으로 한 단계 전진하여, 공산주의를 위해 소수 정예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 전위대인 공산당 이론을 창출한다. 더 나아가, 이성적 연역에 의한 미래 공산사회 도래의 필연론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자각에 의한 인위적 공산 혁명의 「주의설(voluntarism)」로 변신하고, 만국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배타적 단결에 기초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그리고 역사 발전 단계를 뛰어넘는 도약의 법칙으로 발전하는 것이 공산주의 유물사관인 것이다.

 

공산사회의 도래를 단축 실현시키려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 혁명이론에 따르면, 역사변혁은 공산당에 의한 부르주아 정권의 타도에서 시작된다. 자본주의제도의 수호자이며 옹호세력인 부르주아 계급이 파멸되면 즉시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를 실시함으로써, 일정기간 동안 부르주아 잔당을 소탕하면서 공산사회에로의 전환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국가권력을 접수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사유제를 폐지하여 모든 생산수단을 공유화함으로서 자본제적 생산양식을 공산주의적 생산양식으로 변혁시킨다.

 

자본주의의 멍에에서 해방된 생산력이 급격히 증대되고 착취의 필요성에 의한 국가기구의 존재의미가 상실되면 국가는 저절로 소멸되면서 드디어 대망의 공산사회가 지상에 실현된다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혁명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혁명은 현실의 변혁이요 변천인데 헤겔의 변천 과정은 마르크스로 하여금 진실인 것처럼 보였다. 즉, 헤겔 철학의 근본인 절대 정신에 다가 포이엘 바하의 구체적인 물질을 대입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그의 변증법의 기본법칙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첫째, 질량 전환의 법칙(the law of the transformation of quantity into quality)

 

이것은 처음에는 양적인 변화가 오고 그것이 다시 질적인 변화를 초래한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이 0도에서 얼음으로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일정한 점에 도달하면 변화를 가져오는데 이 일정한 돌발적인 비약을 혁명이라고 했다. 그래서 독점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혁명에 의하여 사회주의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둘째, 대립 • 통합의 법칙(the law of the unity opposites)

 

이것은 모든 사물과 현상 또는 과정은 그 자체 내에 모순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물은 얼핏 보기에는 통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 안에는 서로 대립하는 양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으로 가는 길이 서로 가는 길이고 전기에는 음극과 양극이 있어 이들이 대립의 결과로 전광을 발생하는 것처럼 자본주의사회 내에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가 공존하며 전자는 후자를 착취하고 후자는 그들에게 노동을 팔지 아니하고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셋째, 부정의 부정에 법칙(the law of negation of the negation)

 

마르크스는 이 법칙에 관한한 헤겔의 변증법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즉, 모든 사물은 긍정과 동시에 부정되고 부정과 동시에 보다 높은 종합 속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예를 들어 봉건주의 모순은 자본주의로 지양되고 자본주의 모순은 사회주의로 발전된다고 한다.

 

이상에서 간단히 그의 변증법을 보았는데, 이것은 결국 헤겔 변증법의 모방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헤겔 변증법에 의하면 역사는 생산의 정신적 과정인데 반해 마르크스는 물질적 과정으로 본 점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마르크스는 대립 • 모순의 관계를 확대 해석하여 부르주아(bourgeoise)와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를 적대적 계급관계로 유도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한 자본주의국가를 무너뜨리는 데만 골몰하였다. 그렇다면 이 변증법이 동적으로 계속 쉬지 않고 운동한다면 왜 공산주의는 변하지 않고 거기서 멈추게 되느냐를 설명할 길이 없다. 변증법대로라면 공산주의사회는 그 자체 내의 모순에 의하여 또 다시 정 • 반의 작용에 의한 끝없는 변천과정이 전개되어야 한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변증법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도 있고 설명할 수도 없는 끝없이 수렁에 빠지는 만병통치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엔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관하여 살펴보자.

 

마르크스는 포이엘 바하의 기독교 본질을 읽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사변적인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진리에 도달하고 싶어 한다면 오래된 사변적인 철학의 선입관과 개념을 버릴 것을 권고한다. 여러분들에게는 “불의 시내”(Feuer+bach)를 통과하지 않는 진리나 자유의 길은 없다고 할 정도로 포이엘 바하를 높이 찬양하고, 그를 기존 철학에 진실한 정복자로 판단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마르크스가 존경하고 또한 고민해 오던 문제를 포이엘 바하를 통해서 깨우쳤다고 하며 헤겔은 단지 철학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거쳐 가는 단계로 간주하여 헤겔의 세계정신(weltgeist)을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유령(metaphysical specture)이라고 비판한다. 마르크스는 포이엘 바하의 처방에 따라 헤겔을 재해석하게 되며 후에는 다시 포이엘 바하를 비판하여 자기의 유물론을 만들어 낸다.

 

마르크스의 유물론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주현상의 근본에 있어서 물질이 인간의 정신보다 더 본원적이라고 정의한다. 즉, 물질 또는 자연이 근원이고 정신은 그 물질의 파생적 존재라는 것이다.

 

둘째, 따라서 관념으로부터 실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실재가 있은 후 그 실재가 우리 인간 두뇌에 반영된 것을 관념이라고 하며, 정신의 절대적 존재를 부인하고 인간의 사와 더불어 정신은 소멸된다는 것이다.

 

셋째, 그래서 인간의 인식은 실재의 반영이며 또한 의식과 자연은 일치할 뿐만 아니라 모든 법칙은 실천 또는 실험을 통하여 객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인식의 진위를 결정하는 것은 실천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여 인간의 인식이 객관적 실재를 정확하게 반영 하였는가 못하였는가는 실천을 통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를 골간으로 한 유물사관(materialistic interpretation of history) 또는 사적 유물사관(hitorical materialism)은 마르크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를 인간 사회생활에 적용한 것이다.

 

사적 유물론에 관한 사상은 1846년 엥겔스와 공저인 독일의 이념(German Ideology, 1846)과 정치 경제학 비판(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1859)에서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다. 마르크스는 정치 경제학 비판 서문에서 모든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하고 자문자답 하면서 설명하기를 ‘나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결과에 도달했다. 즉 법률적 관계와 국가의 형태들은 그 자체에 의해서는 이해될 수 없으며 또한 소위 인간 정신의 일반적 발전으로서도 설명될 수 없고 오히려 이들은 헤겔에 의해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인들에 의한 시민사회라는 종합하고 있는 물질적 생활 관계에서 찾아져야 한다. 고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공식화가 이루 질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수행하는 사회적 생산에 있어서 인간들의 의지와 관계없는 일정한 필연적 관계에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관계는 생산에 있어서 인간들의 물질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상응하는 생산관계를 가진다. 이들 생산관계의 전체적 종합이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 기초 위에 하나의 법률적 • 정치적 • 상부구조(super structure)가 형성되며 그 확고한 기초 위에 사회적 의식의 형태가 상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은 사회적 • 정치적 • 정신적 생산과정들의 일반적 성격들을 결정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사회 발전에 있어서 기본적인 요소는 경제적 조건이고 그 사회의 발전은 변증법에 의하여 이루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 사상으로 성장되었기 때문에 실재(reality)와 현상(appearance)사이에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구별과 무엇이 본질적이고 무엇이 우연적인 것(what is essential and what is accidential)과의 상응하는 차별에 의하여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는 실재(reality)가 물질세계(material world)와 일치하고 현상이 이념, 혹은 관념(thoughts or idea)과 일치하는데서 헤겔 사상을 극복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모든 사상과 관념을 밑에 놓여 있는 본질적 실재 즉 경제적 조건으로 나타냄으로써 설명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일부분은 맞을지는 몰라도 모든 것을 너무 성급하게 취급한 나머지 자체의 모순으로 빠지게 되었다. 즉, 경제적 요인에 의하여 자본주의 국가는 기필코 망한다는 예언은 오늘날 많은 자본주의 국가가 상존해 있음을 마르크스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현대사회에 있어서 국가가 안정되어야 경제도 발전하고 경제도 발전해야 국가도 안보도 튼튼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경제 우위만을 주장할 수도 없고, 또한 정치 우위만을 주장하는 것도 모순이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사회를 분석할 때 가진 자와 못가진자를 중심으로 풀어 나가는데 생산력이 변화하고 자연적으로 생산관계가 변함에 따라 생산수단의 가진 자와 못가진자가 형성되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때문에 가진 자와 못가진자가 증가 확대됨으로써 급기야는 못 가진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혁명이 발생되어 낡은 생산관계는 새로운 생산관계에 의해서 바뀌고 최종적으로는 마르크스가 바라는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고정을 변증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노예제도, 봉건제도, 자본주의제도가 자체 내의 모순 ․ 대립에 의한 변증법의 순서에 따라 공산주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모순 ․ 대립을 통한 변증법적 발전은 역사의 필연적인 법칙이라고 생각하였다.

 

헤겔의 변증법인 정(thesis) • 반(antithesis) • 합(synthesis)의 이론이 마르크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사회주의 혁명을 실천적 이론으로 합리화시키는 방법을 쳐 최종 목표를 하는 사회는 「공산사회」에 두었다. 그리고 포이엘 바하와 마르크스가 말하는 물질과 인식에 한 문제에 있어서도 물질이 우리 인간 두뇌에 비친 영상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죽으면 두뇌도 없어질 것이고 두뇌가 없다면 물질도 없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마르크스의 이상향이었으며 모든 공산주의자들의 영원한 안식처로 향수되고 있는 공산사회는 어떠한 사회일 것인가? 이에 관하여는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어느 공산주의자도 체계 있게 포괄적으로 청사진을 제시한 일이 없다. 다만 공산주의 유물사관에 따르면 마르크스나 엥겔스 그리고 레닌 등 공산주의자들은 공산당에 의한 폭력혁명을 통하여 공산사회의 실현이 단축될 것이며, 또 단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아마도 당시의 역사 결정론을 철저히 신봉하다가 공산당에 의한 공산혁명이라는 주의설(Volutarism)로 표변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필연론 을 부과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가변성으로 전화하는 공산주의 유물사관 속에는, 서로 상극에 있는 두 견해가 아무런 해명도 없이 공존함으로서 철저한 논리적 모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어떤 이론이 타당하거나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가려내는 기준은 실천운동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이론의 타당성과 진리성 여부를 검증하는 척도와 기준을 실천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하겠다.

 

칼 만하임의「지식사회학」에 의할 것 같으면,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주의 • 사상일지라도 절대적이거나 신성불가침한 것이란 있을 수 없으며, 어떤 이데올로기도 때와 장소의 제약을 넘어 보편성과 타당성을 갖는 영구불변의 진리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이라는 유한적 인간두뇌의 소산인 마르크스-레닌주의도 많은 오류를 갖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오늘날 중국을 비롯한 많은 공산주의 국가와 공산당마저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거부,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