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혁명. (부제: 국가통치사상학)_7/100회_지하경제권력.

 

 

그렇다면 개혁이란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

 

 

개혁의 성과는 개혁의 의지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즉, 참 개혁을 하고자 하는 의지에 있다. 우리는 쿠데타로 새 정권이 창출될 때마다 정치적 숙청을 무수히 보았다. 자기 무리의 정치적 권력 기반을 위해 승자가 가하는 정치적 숙청과 경고성 숙청, 그리고 국민을 의지한 본보기 사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한국적 전통으로 본 ‘우리식 개혁’인가? 이것도 한국병의 하나인가?

 

개혁의 속성은 인위적 수술에 있다. 진화론적 성장과 변화만으로 체제의 발전과 성숙이 미흡할 때 ‘수술적 교정 ’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제도적-주기적 개혁이 전무했거나 지연된 경우, 체제가 요구하는 개혁은 ‘대수술’일 것이며 이는 위험 부담을 동반하는 외과적 수술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정조치를 개혁의 동의어로 해석할 수 없다. ‘선별적’ 혹은 ‘임의적’ 또는 ‘편의적’ 사정 등, 형평성을 상실한 비리 척결은 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부정부패의 출발점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준 없는 ‘사정의 메스’는 곧 새로운 독선을 낳게 된다. 또한 ‘민주적 절차’는 ‘민주적 원칙’보다 더 소중하다는 진리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 이는 문민정부의 변화와 개혁의 차원에서 국민적 지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볼 때, 여기서 말하는 “국민”이란 결국 여러 계층으로 이루어진 무책임한 이기주의적 집단이며, 정의감은 물론 민주의식도 없는 자칭 선민층이다. 권력을 상실한 구시대 상층권은 생존을 위해 비굴할 정도로 개혁정권에 협조적 일 것이다.

 

개혁의 친정한 적은 부정부패와 비리 부조리한 상층권의 썩은 구세력이 아니다. 부정부패하고 비리 부조리한 구시대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관변 지식 엘리트와 악덕 정권을 관리 운영한 기술 관료 엘리트 계층이 새 시대의 참 적들이라는 데 귀결되고 있다.

 

우리가 문민정부의 ‘변화와 개혁’ 현상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것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을 지향한다면 그 본질적 과제는

 

문민정부의 변화와 개혁을 바라보는 국민의식 구조의 개선이다. 그리고 한국정치사의 정치권력 창출과 정권유지 차원에서「4대 유착」(정경유착, 정종유착, 정언유착, 정폭유착) 등과 복합적이고 다원적으로 병렬되어 있는 현 지배 권력 구조 또한 변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 한국정치사에 있어 지배권력 구조의 변화가 지배집단 자신들의 주체적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없이 병 폐화 되어있는 만큼, 비록 현실적으로 지배 권력에 변형 창출되어진 문민정부로써 양비론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하더라도 김영삼 대통령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집단 이기주의로부터 탈피하려는 국민의 의식변화, 그리고 지배 권력의 변화 구조에 있어 강화된 야당의 견제세력 구도에 따라 상대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문민시대의 경험의 부재가 한국의 정치발전 과정에 남긴 폐해를 생각할 때, 김영삼 문민정부의 ‘변화와 개혁’의 역사는 필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정치사에 있어서 핵심 변수의 하나로 부각되어진 지하 경제에 의존된 양비론적 정치권력 구조, 즉 절대정권 창출 및 정권유지 차원의 형성과정을 통해 고착되어진「4대 유착」(정경유착, 정종유착, 정언유착, 정폭유착) 배경을 분석하고, 정치체계의 전반에 걸쳐 표출되는 성격과 그 문제점을 중심으로 제 6공화국 김영삼 정부의 ‘안정 속에 변화와 개혁’의 의미를 해석 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시 되어야할 것은 한마디로 통수권자의 통치철학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정치체계가 한국에 실질적으로 국민대중 속에서 정당으로서의 변모들 갖추고 성장 발전하기까지 1945년 8 • 15 해방 이후의 미군정시대부터 어언 4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 동안 한국의 통치 형태를 대통령중심제, 내각책임제, 신 대통령제 유신체제를 도입시켜 걸어온 발자취를 보면 문자 그대로 형극의 길이었다.

 

한국정당 정치의 발생 연원은 이조 말엽의 사대당과 개화당에서 부터 1894년 동학혁명과 갑오경장을 통한 정치 과정에서 파악하는 학자들도 있고, 독립협회의 활동에서부터 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한말 • 일제 통치시의 독립운동 당시의 정당은 명확하게 일반적인 정당의 구성요소나 활동 면에서 현대의 정당정치 개념과는 너무 미흡한 점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일제통치의 식민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8 • 15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는 제 6공화국 김영삼 문민시대까지 한국의 정치사는 정당의 빈번한 이합집산, 정강정책의 부실, 인물 위주의 정당운영, 자금조달의 비능률, 국민의 민주적 정치의식 형성의 미흡, 조직상의 문제, 국내외 정치 환경요인 등이 한국 정당 정치에 산재해 있는 까닭에 수많은 정당의 속출과 이의 명멸 과정을 보았다.

 

특히 한국의 집권당은 통치자의 필요에 따라 하향식으로 조직된 외생 정당이었으므로 경쟁체제를 이룩할 수가 없었으며, 이러한 생리로 말미암아 반대당에 대한 공평한 경쟁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기들에게 저항하는 야당의 발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기의 정당결성 과정에서 특이한 사실은 정부수립과 동시에 이승만 대통령에 대항 하던 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반대당이 먼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당사를 고찰해 본 때 아직 전통적 권위주의와 인물 중심적 정당체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은 정권의 유지와 집권의 정당성을 위한 정치 집단이나, 정권을 쟁취하려는 비권력 정치인들의 투쟁 집단으로 흐르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정당은 대중으로부터 소외된 정치 집단으로 오직 집권을 위해 대중을 이용하는 데 그쳤다고 보아진다. 그 결과 정당의 불신을 조성했고 이것은 현대의 정당이 필요로 하는 국민의 정치 참여를 저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정당과 국민 대중과의 사이에는 격차가 형성되고 정당정치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되었으며, 크게는 민주주의 근본이념이 흔들리게 되어 정치변혁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정치사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이것은 대중 참여의 폭발을 수용하지 못한 채 정치적 근대화의 가장 기본인 정치 참여와 이를 조직화 할 수 있는 정치조직이 발전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

 

특히 한국정당 조직은 서구와 같은 대중정당이 조직 되지 못하였으며 특정 지도자와 국회의원인 지방의 소「보스」에 의하여 조직된 명사 정당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공익을 추구하는 공당이 되지 못했으며, 남북 분단으로 인한 보수주의적 성격 때문에 특정 이념의 표방 및 혁신적인 이념이 배제됨으로써 정책 정당이 형성되지 못했었다. 이러한 성격과 집권 체제의 성격으로 인해 한국의 정당은 경직성, 단순성, 종속성, 분열성의 정도가 높아 제도화가 달성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즉, 한국의 정당이 연륜을 갖고 정치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였으며, 정당 조직의 기능 분화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단순성을 나타냈으며, 집권 체제의 독주와 국내외 정치 환경에 대한 자율성의 결여, 정당내의 이념, 정책의 부재, 음성적인 당내 파벌의 존재 등으로 한국의 정당 정치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한국정당 정치에 있어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또 다른 신생국가들의 경우와 같이 반사회적 이기주의화에서 기인된 정상배 정치가 꽃을 피웠다. 자유민주주의를 가장한 정상배 정치는 신생국들의 역사적 과제인 산업혁명 즉, 근대화를 저해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실업의 극을 이루었으며, 이로 인한 정치적 악순환은 혁명의 연속이라는 뼈저린 아픔을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4 • 19혁명과 5 • 16 군사혁명을 초래했고, 특히 5 • 16 군사혁명 이후 제 3공화국은 근대화 산업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가장한 정상배 정치를 봉쇄하기 위하여 제 4공화국의 유신체제와 같은 개발 독재 체제를 겪었다.

 

이른바 한국 민주주의의 토착화에 문제되는 것은 국가 발전에 있어 경제 제일주의의 경제성장 정책이 외자 도입과 수출증대에 따른 산업화정책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민족적인 자립 경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대외 의존적인 경제 체제가 이룩되었다. 그리고 국민경제의 확대와 생산력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발전이이루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강제적 억압과 국민 일반의 기본권 침해가 증가되었다. 또한 일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우선적이고 집중적인 개발 정책으로 인하여 지역 간의 격차가 증대되고 지역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발전이 완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유민주주의만을 강요한다면 지금과 같은 소극적 제동 장치로서는 도저히 정상배 정치 타락 정치를 막을 길이 없으며 이에 따른 연속혁명의 수반으로 정치적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은 정치 과정상의 문제이다.

 

그러나 현대의 보편적인 가치체계가 민주주의이며 민주주의의 실현을 정당 정치에 의존한다고때, 정당의 존재는 민주정치의 실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인 것이다. 정당의 존재를 정치의 기본요소로 생각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로「롬바라」(Joseph Lapalombara)와「웨이너」(Myron Weiner)가 정당을 근대와 근대의 정치 체계에 의하여 발전된 것으로 규정하면서 그것이 민주정치 제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정치 조직체가 되었음을 지적한 것은 바로 정당 정치가 의회정치의 성패를 결정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보았기 때문이다. G.Leibholz 역시,“현대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진보적 균일화 과정의 결과, 정당만이 유권자를 정치적 행위 능력을 갖는 집단으로 결합시킬 가능성을 갖는다는 점 그리고 정당은 성인된 국민이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하고 정치적 영역에 있어서 행동을 가능케 하기 위해 이용하는 메가폰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정당이 국민으로 하여금 비로소 정치적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유일한 조직이라면 정딩에 의한 국민의 중개는 이른바 현대 민주주의의 본질에 속한다.” 라고 한 것은 이를 적절히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이로써, 오늘날 국민의 정치참여는 민주정치 실현의 수단임과 더불어 그 정통성과 합법성의 근원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현존하는 모든 정치체제가 정치 참여의 외양을 갖추는데 노력하고 있는 것은 현대 정치 체제 에서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되고 있는 국민의 정치 참여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될 때 그 실효성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즉 국민의 정치 참어를 유도하고 조직화하는 제도적 장치인 제도화 된 정당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정당이 정치참여 나아가서 정치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 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당조직은 정치참여를 위하여 마련되었고 정당의 활동은 정치적 참여를 위하여 행하여지고 있으며 정당의 정책이나 주장은 정치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치참여의 가장 주요한 통로 또는 매개체가 바로 정당이다.

 

특히 국민형성(Nation Building)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충 • 대립하는 각종 이익을 통괄 • 조정하여정치 참여 촉진하고 조직화 하는 효율적인 정당의 확립이다.

 

그러나 정당을 운영하기 위한 당 재정은 정치 자금 확보의 종속성 등으로 인하여 정치의 부패현상을 초래하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일반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러한 정치 자금은 흔히 그 공급 및 공급자의 입장에서 ‘개인들 흑은 집단에의 정치 현금(political donations)으로, 이는 실제의 모든 사회 속에서(인간 의) 정력과 (사회의 )자원을 지배할 수 있는 주요한 매개체로서 규정되기도 하고, ‘정치활동을 위하여 소요되는 비용으로 화폐 • 유가증권 및 기타의 재화로써 조성 • 운영되는 자금’ 혹은 ‘정치 • 정당 활동 및 운동에 필요한 자금으로 즉, 정치인 개인과 정당 기타 정치단체의 활동자금’으로 정의된다. 그렇지만 통상 ‘정치 활동의 원동력’,‘정치의 젖줄’이라는 다소 긍정적 표현과 ‘정계의 검은 돈’,‘정계의 비자금’ 등의 부정적 의미로도 표현되는 정치자금의 경우,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정치사회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국민의 자발적 조직체로서의 정당이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라고 부언한다면, 이는 책임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 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 정치적 의사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정치활동의 원동력을 위한 정치자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경쟁의 승패가 곧 정치자금의 조달과 분배의 기술에 직결될 만큼 정치 자금은 정당정치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활동의 원동력 ’이라 할 수 있는 정치자금은 흔히 ‘빙산의 일각’이나, ‘정계의 지하수도’로 비유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액수가 막대할 뿐만 아니라 수입 (출처 )과 지출(용도)에 부정과 관련된 많은 의혹을 품고 있기 때문에 정치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어 왔으며, 특히 오늘날 인구의 증가와 선거권의 확대, 매스컴 등 선거운동 매체의 발달 등으로 인한 선거운동 자금의 급속한 팽창은 자연히 그 비용의 조담을 거액의 기부에 의존하게 되고, 그 결과 선거자금이 정치에 대하여 부당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정치적 부패 현상을 가져올 위험성을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정치자금과 결부된 정치적 부패현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치자금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합리적으로 조달되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다시 말하면 정치자금의 합리적인 조달이 곧 민주정치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당의 건전한 육성, 선거 수행의 공정과 평등 확보, 정당의 외부세력으로부터의 재정적 독립을 통하여 정당의 민주적 내부 질서유지와 건전한 민주정치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하여 정치자금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정치 자금 제도는 그 시대의 정치 제도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정치적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정치 자금 특히, 선거 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입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규제 내용은 각 나라의 역사적 배경이나 기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제 환경 등에 따라 독특하게 발달되어 왔으나 대체로 정치자금 수지의 공개, 기부의 제한 및 지출의 제한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정치자금 규제에 따른 재원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당에 대하여 또는 선거비용의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하고 있는 국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아무튼 정당이 활동 하는 데는 거액의 경상비와 대 국민 선전 자금 및 정책 입안 자금 등을 필요로 하며, 특히 선거 시에는 막대한 선거자금을 요한다. 그러나 정당은 영리 단체가 아니므로 자금 조달의 ‘루트’가 따로 있어야 하는 불가피한 입장에 서게 된다. 일반적으로 당내에서는 당원이 당비를 부담하며 특히 당 간부와 국회의원 등이 일정액을 부담하지만, 이것은 근소한 것이므로 정당은 별도로 당 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당 외에서의 조달 방법은 일반적으로 정당 지지자인 개인이나 단체로부터의 기부이다. 예컨대 보수 정당의 자금은 경제단체 등에서 조달하며, 혁신 정당 특히 노동당 계통의 정당자금은 노동조합 등에서 조달한다. 따라서 당비 이외에는 모두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으로써 그 유입경로에 직접 • 간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정치자금이란 다양하게 그 개념이 정의되고 있으나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고 정책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구하고 국민이 토의하는 기회를 만드는 데에 따르는 비용, 즉 민주주의의 비용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정당을 움직이는 세 요소로 흔히 이념 • 조직 그리고 자금을 든다. 그러나 이 세 요소는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그 어느 한 요소가 없이는 정당은 존립할 수 없거나 그 존재의의를 상실하게 됨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경우에도 한편으로는 정치자금의 수혜자로서 (과거의 경우, 금권 선거와 대상자로서 ) 규정될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큰 피해자 일 수밖에 없겠다. 왜냐하면 자금 제공자로서의 기업의 경우 과거의 예를 볼 때, 자금 제공에 대한 특혜 및 반대급부가 정치권으로부터 주어지며, 또한 지출된 비용은 기업 손비처리 로서의 배려 및 제품에의 원가 상승으로 소비자(일반국민)에게 전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국정 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정치자금 조성과 관련한 갖가지 의혹들’을 문제로 제기하였던 점. 아울러 지방 자치선거법개정과 관련한 여 • 야 총무회담 중에 정치자금법의 개정이 다시금 검토되고 있다는 점은 첫째, 현실 정치에서 아직도 정치 차원의 비공식적인 자금 조달이 대규모로 운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제고 둘째, 이제 불과 개정된 지 1년도 안된 법의 개정 검토는 역설적으로 이 공식적인 정치자금법 및 제도의 많은 허점을 정치권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제 3공화국의 박정희 정권은 정치자금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정치자금에 관한 법」을 제정했지만 거의 형식적 운용에 머물렀고, 오히려 야당 및 반대파의 탄압 수단화하기도 하였다. 또 제5공화국의 전두환 정권과 제 6공화국의 노태우 정권은 이러한 정치자금의 폐해를 시정하고 건전한 정당정치의 풍토를 조성 한다는 명목으로 정치 자금법의 현실적 개정과 건전한 육성을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정치자금 조성의 명목으로 엄청난 정치비리와 부패를 표출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정치 자금은 권력 구조에 절대적 변수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 정치의 권력 구조가 절대 권력 창출과 정권 유지 차원에 따라서 필요로 하는 정치 자금 형성과정은 매우 은폐적이고, 지하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복합적인 인과관계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을 이루는 정권차원의 정치 자금은 흑막에 가려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가끔씩 표출 되는「정치비리 및 부패와 관련한 사건」들은 이러한 비공식적인 자금조달의 부분적인 현상 들일 뿐이며, 아울러 그러한 조달과정에서의「풍문 혹은 설(說)」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시대적 상황 변동에 의한 통치 원리로써「4대유착」(정경 유착, 정종유착, 정언유착, 정폭유착) 배경에 의존된 양비론적 권력 구조 형태와 더불어 권위주의적 퍼스낼러티에 따른 지역 균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도르노(Adorno)와 그의 동료들은 권위주의를 측정하기 위해서 한 척도를 발전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F 척도(fascismscale)라고 말한 바 있으며, 로키취(Rokeach)도 F 척도가 권위주의 일반을 측정한다기보다는 우익의 권위주의(right-wing authoritarianim)를 측정한다고 지적하면서, 편견 없는 접근법이 되려면 신념 체계의 내용(content)이 아니라, 구조(structure)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적 퍼스펠러티에 따른 지역 균열 현상은 서구의 근대 사회의 경험 및 이에 기초한 근대화론에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은 근대 사회의 일반적 경험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근대화론 자체에 대한 불충분한 검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이에 대해 스미스(Smith)는 근대화가 전통 사회에 나타났던 집단 정체감의 근거를 해체하고 새로운 집단 정체감의 틀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근대화를 통해 새로운 집단 정체감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주의화, 원자화되는 경향도 존재한다고 발하고 있다.

 

이렇듯 개인주의화, 원자화된 사회 속에서 집단적 정체감이 요구되는 경우 그것은 혈연, 지연, 학연 등 전통적 정체감과 연결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근대화 및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곳일수록 두드러진다고 말하고 있다.

 

제 3세계의 정치 참여 과정을 비교 연구하였던 Nelson은 제3세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전통적 정체감이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고용 기회 및 사회적 진출 등 현실적인 삶의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 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서구 선진국에서도 파악된다는 것이다. 아라비, 레이즈 등은 자신들의 연구에서 권위주의 통치구조를 가진 나라들일수록 사회적 관계 및 균열 구조의 형성에 전통적 일체감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경향을 개발도상 국가의 특성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지역이라는 집단 범주는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 1차 집단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 일상생활의 공동 공간으로서 집단 정체감 형성의 요소를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 공동체를 해체하고 재구조화 하는 사회 변동이 일어나거나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분할하고 분열시킬 만한 정치 사회적 쟁점이 발생하지 않는 한, 지역 범주의 집단은 정치사회적 동맹 세력이 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볼 때, 우리는 역시 ‘왜 우리 한국에는 민주주의가 발생하지 못하였고, 그것이 오늘날 제대로 성장하지 못 하는가’ 라는 문제를 내걸고 이 각도에서 인간이 이성이란 무기를 가지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프로메테우스」(Prometheus)적 노력을 계속해 왔지만, 인간의 본능적인 자유 추구와 정치권력이 갖는 본질적 속성과의 상충 때문에 영원한 숙제인지도 모른다. 이들 문제가 갖는 중요성과 심원성으로 인해 수많은 정치 사상가들의 해결 방안이 연구되어 왔으나,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 까지 이들 문제에 접근하는 대부분의 방법은 정치철학적 접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