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혁명. (부제: 국가통치사상학)_8/100회_지하경제권력.

 

 

최근 한국정치사는 김영삼 정부의 정권교체를 일컬어 명실상부한 문민시대로서의 전환을 가져왔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나 정권 창출 과정에 있어서 5 • 16이래 지배권력 집단과의 3당 합당으로 인하여 유신의 잔재와 신군부의 유산을 일정부분 소유 권한의 배분형태를 가짐으로써 향후 정국 구도에 있어 추구하고자 하는 ‘안정 속에 변화와 개혁’ 정책에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김영삼 정부가 5공화국의 출발점이 됐던 12 • 12 사태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5 • 16을 군사 쿠데타로 재평가했고 헌정사의 정통성과 민족정기를 회복한다는 뜻에서 4 • 19의거와 5 • 18 광주민주화운동 6 • 10 항쟁의 연장선상에 문민정부가 있음을 선언하는 등 과거 현대사의 재조명을 천명하고 나섬에 있어서도, 이에 대해 제 6공화국의 노태우 전 정권 측에서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이를테면 ‘노태우 대통령은 군 출신이지만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따라 국민에 의해 선출된 민선 대통령이므로 노 대통령 정부도 문민정권’이라고 주장하며 김영삼 차기 대통령 정부가 노 대통령 정부의 연장선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태우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으로 권위주의 체제가 이완 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기존의 협소한 정치 • 이데올로기 지형이 엄존하고 있으며, 각계각층의 자유로운 정치를 저지하는 지역주의 정치 행태 등 전근대적인 정치 문화가 강한 규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김영삼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안정 속에 변화와 개혁’ 정책에 관한 통치 관념에 대하여 유명을 달리한 철인들의 사고를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홉스는 국가란 본질적으로 반사회적 존재인 분리된 개인들의 단순한 군집으로서, 그것은 반사회적 존재들이 안전하게 자기의 것을 보전하기 위하여 국가를 세운다는 기묘한 역설 위에 국가를 세움으로써, 홉스 이후의 모든 시대가 당면해야 할 국가와 개인의 대립 관계를 가장 명확하게 제시했다. 즉, 홉스가 보기에는 국가와 개인의 대립은 반사회적이며 이기적인 개인들이 필연적으로 빠지게 되는 자기모순의 결과로써 이는 국가내의 개인들이 극히 이기적인 동기에서만 행동한다면 정부의 역할은 기껏해야 그러한 개인들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만을 조정하는 중립적 기구로 전락 될 것이고 또한 정부의 무제한적인 강제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홉스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 당시의 모든 사회적 무질서와 온갖 병폐의 원인을 상술로 획득한 재력을 이용하여 새로이 막강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는 중산 계급의 이기적이며 이해 타산적인 생활 태도에 두었다. 이를테면 무질서와 병폐의 구제책으로 정치적 안정은 정치 상황의 변동에 의한 통치 원리의 변경이 필요한 때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권력을 남용할 때에는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정치적 안정을 위한 또 다른 측면 즉 피치자의 정치적 자유의 합리적 수용을 무시하였다고 볼 수있다. 결국 그의 정치 권력론은 피치자가 자발적 동의라는 정치적 자유를 한번 행사하여 국가 주권을 설립한 다음 이를 통하여 정치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서 더 이상의 정치적 자유권의 행사는 불가하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비연속 변증논적 정치권력의 관계 유형에 속하는 한계성을 노출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인 의도는 부족하기는 하지만 피치자의 정치적 자유와 치자의 정치적 권력의 조화로 이해된다, 따라서 그의 정치 권력론은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중 어느 한 사상을 뒤받쳐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나 전체주의가 부패하였을 때 나타나는 폐해 즉 정치적인 자유를 극단화하여 정치적 질서를 파괴 하는 경우나 피치자의 정통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로 절대 권력을 휘둘러 피치자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 정치적 안정을 위한다는 이유로 다 함께 위험시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해버트에, 알렉산더의 논문에서는 ‘변화와 개혁’이 이를 추진하는 타력이 개혁 운동가들로부터 의회 내의 권력 브로커들에게 넘어 감에 따라, 제1단계에서 제2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에는 가까운 장래에 개혁 조치들이 지난 수 년 간의 경우에 비하여 야심이 적어지게 될 것이라는 이유들을 제시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개혁가들은 민의는 위대하지만 그 민의는 집권 후 지체 없이 정치의 차원에서 공공화 또는 조직화되어야 할 것 이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사기〉노자 한비열전에 의하면 어려운 조국의 위기를 눈앞에 두고 고심한 한비는 합종이나 연횡이나 모두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약한 조국을 구하려면 엄한 법치로써 국력의 조직화를 통한 부국강병의 국가를 건설할 필요를 역설하였다.

 

왜냐하면 치국부터 시작할 때, 현대 국가에서 집권 직후에 곧 바로 제기 되는 과제는 모처럼 쟁취한 권력을 정착 • 발전시키는 일이므로 권력 공고화 방책은 전술적 견제 및 균형(check and balance)과 전략적 법치제도 방안으로 간추릴 수 있다.

 

대부분의 민주 국가에서는 선거들 통한 집권에 대하여 예컨대「대통령의 밀월」(Presidential Honey Mooπ) 등 약 2~3개 월 간의 여유를 주며 거센 비판이나 냉혹한 공격을 삼가는 것이 관례로 되었으나 이 기간을 허송세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질적 혜택의 균형을 실현하면 즉효를 기대할 만한 하겠으나 인구가 적은 산유국도 아닌 조건에서는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니다. 옛날이면 부채의 탕감이니 세제상의 일시적 배려 등이 착상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시대와 여건이 판이하다.

 

돈 안 드는 선심 공세 중에는 대사령과 수배 해제, 명예회복과 복권조치 등을 포함시킬 수 있으나 지지의 폭을 확대하려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리하여 물질적 혜택과 맞먹는 비물질적 수단으로 정치병법 상 각광을 받게 되는 것이 대중 명분론에 바탕을 둔 대중적 보복 심리의 만족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명칭은 혁명이 아닌 개혁, 부정부패의 척결, 뇌물 진급이나 부정 입학의 일소, 부조리의 시정, 한국병의 퇴치 등 박력 있는 표방을 뚜렷이 할 수 있다. 다만 내용에서는 그동안 돈과 벼슬을 부당하고 이기적으로 누려오면서 대중의 빈축이나 불만을 산 기득권층에 대해서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통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도 유의할 것이 있다.

 

본시 그러한 타격이란 전면적, 일시적으로 철저히 가해져야 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만만해 보이는 분야부터 착수하여「일벌백계」를 논한다든지, 또는「개혁에 중단이 없다」고 질질 끈다든지 이럭저럭 관대함을 과시하다가는 결과적으로 용두사미 꼴로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위험스러운 사태를 자초하게 될는지 모른다.

 

우선 당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반성하지 않고「왜 나만 당하느냐」든지「억울하다」는 식으로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마키아벨리의 말을 인용한다면「인간이란 작은 가해에 대해서는 복수하지만, 엄청난 가해에 대해서는 복수하지 못 한다」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군주론 제3장). 또 직접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 주변에서 불안에 떨던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말하던 종전의 지지를 철회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한때 통쾌해 하던 기대가 한계에 부닥치는 것을 보자 설망하게 마련이다. 다른 한편 과격파들은 스스로 전면에 나서 투쟁적 사태를 조성하고 주도하려고 할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그동안의 명분은 순간적으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사리가 그렇거늘 일시적 인기에 기대여 방심하거나 또는 가변적인 여론 조사에 나타난 높은 지지율에 현혹되어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애당초 인기니 지지율이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에 비교해 보더라도 뿌리가 없는 것이어서 고무풍선처럼 풍향에 따라 조석변개도 못되는 시각변이다. 더구나 유사시에 풍선이 방탄 구실을 해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으로 하여금 정권 획득을 가능케 해준 3당 합당은 기득권 세력과의 타협의 산물인 까닭에 김영삼 정부가 개혁을 내걸 때, 그 대상인 기득권층의 견제와 반발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기득권층이 자신을 지지해준 대가로 개혁의 수준을 낮춘다면 개혁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랜 야당 생활을 통해 개혁적 분위기를 충분히 익히고 있으면서도 기득권 세력에 ‘투항’함으로써 얻어진 ‘후천적 원죄’는 선거에서 그들 소극적이나마 지지해준 다수의 안정 희구 세력과 소수 이지만 온몸으로 그를 당선시키는데 큰 몫을 한 민주산악회와 같은 야당 성향의 절대 지지층 사이의 이해 갈등에서도 잠재하고 있다. 제한된 기득권층의 몫을 지키려는 안정 희구 세력과 기득권 층에 새로 편입하려는 옛 야당 성향 계층의 갈동은 김영삼 대통령으로 하여금 변화와 개혁의 중심축을 바로잡지 못하게 할 공산이 크다.

 

율곡은 이 같은 시대 상황을「썩기가 날로 심하여 붕괴하려는 집과 같다」라고 보았으며, 따라서「마땅히 임목을 모으고 족 목수를 모아 새로 지을 것」이라고 하여 문제의식을 자지고 과감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한 사회의 상황은 그것을 인식하는 자의 시각에 따라 문제의식과 개혁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인식 주체의 사상적 성향에 따라 결정 된다. 그러므로 율곡의 개혁사상이란 논리적 필연성에서는 당시의 국가의 위기적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개혁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여기에서 율곡은 연기법(理通氣局) 이론을 바탕으로 개혁을 주장하게 되었는데, 이른바 수신(안정)과 치국(개혁)의 병행을 제안함으로써 혁명이 아닌 점진적 개혁(변화)을 내세웠던 것이다

 

개혁사상의 이론적 타당성에서 율곡은 사회 개혁의 일차적인 목표가 양민, 즉, 백성들의 물질적인 만족에 두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성군론, 덕치주의 등에서 강한 어조로 덕치 정치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영구불변의 연기(理通)로써의 왕도 • 인정 • 삼강 • 오상을 두게 되었다. 이로 인해 스스로 변통의 한계성을 긋게 되었다.

 

개혁사상의 시대적 적합성에서는 율곡 자신의 말대로 갱장을 하여야 할 시기였으나 개혁 중심세력의 미성숙으로 인하여 그의 개혁사상이 시선성과 타당성을 띠고 있었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안정 속에 다소 변화는 있을 수 있으되 안정 속에 개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 즉, 개혁의 의미를 혁명에 가까운 혁신적 신사고에 바탕을 둠으로서 “안정 속에 변화와 개혁”이란 변통의 한계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될 것이다. 따라서 소련에 일고 있는「개혁」(페레스트로이카)이 담보하고 있는 객관적 요체들이 과연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진정한「개혁」(페레스트로이카)의 의미와 관련하여 재삼 비교 분석하고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 되고 있다.

 

현재 소련에서 진행되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란 무엇인가? 특히 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은 물론 사회주의권 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에 있어서 그 의미는 무엇이고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이 질문은 ‘질적 전환’의 시대라고 불리우는 현대 세계정세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이다. 또한 페레스트로이카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질서의 재편은 물론 남한의 정치정세에도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대외정책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평가는 어느 한 분야만의 연구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가 초기에 경제 분야에만 한정해서 출발했다가 그 자체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개혁으로 나아갔듯이, 정치개혁은 현재 소련의 개혁에 있어서 핵심적 고리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경제의 집중적 표현이라는 말의 의미처럼 한 사회의 현재 모습과 전망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정치체계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을 통해 페레스트로이카를 평가하고 전망을 예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 우리의 정당 체계는 의회 정치의 실제 운용 양상을 좌우함과 동시에 전체적인 정치체계(political system)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정당 체계의 문제는 단순히 정당의 수량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의 체질을 좌우함과 동시에 그 나라의 정치 현상 전반을 지배하는 중요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 정당 체계에 따라서 정치적 일체감(political identity)의 형성, 정치적 동원(political mobilization), 정치적 욕구와 정치 세력에 대한 부합 문제, 정치 운영 기술(political skill)의 문제, 정치적 안정과 불안정의 문제 등이 좌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의와 관련하여 한국 정치사의 지하경제에 의존된 정치 형태 및 정당 체계가 나타나는 양비론적 정치권력 구조 배경과 그 성격을 중심으로 문민시대의 ‘변화 및 개혁’ 함의를 다음과 같은 가설적 명제들을 중심으로 검증하고 설명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수용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첫째, 한국사회는 격변기의 불안정과 불확실성의 시대 추이로 인한 정파의 이합집산식 구조적 한계 및 지하경제에 의존하여 정책 형성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둘째, 한국정치의 권력 구조가 절대권력 창출과 정권유지 차원에 이루어지는 정치자금 형성 과정은 매우 은폐적이고, 지하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복합적인 인과관계를 이루고 있다.

셋째,「4대 유착」(정경유착, 정종유착, 정언유착, 정폭유착)차원에서 표출된 정치 행태는 특히 정경유착 중 혼 맥을 통한 정치세력의 위상 및 정치재편 속에 숨겨진 정치권 정략 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넷째, 시대적 상황에 대처한 김영삼 정권창출 과정에 있어서 5 • 16 이후 지배권력 집단과 3당 합당으로 인한 유신 잔재 및 신 군부의 유산을 일정 부분 소유 권한 형태로 배분된 구조는 문민정부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모순적 편견에서 비롯된 권위주의적 퍼스낼러티와 여기에 정치적 대립이 중첩된 집단 이기주의의 갈등이라는 이중적 구도로써 지역 균열 현상을 확대 심화시켰다.

 

다섯째, 제 4의 권력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매스미디어의 여론 정치적 기능에 의존된 김영삼 정부의 정책 결정 형태는 새로운「패러다임」의 정치 갈등 구초가 증폭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나타났다.

 

여섯째, 김영삼 정부의 정치자금에 대한 ‘변화와 개혁’의 구도는 향후 금권대부의 출현과 함께 금권정치의 계보 형성 가능성이 예고됨으로써 정치자금 개혁함의에 있어 법적유권 해석상 모순성이 내포되어 있음이 발견되었다.

 

위의 가설에 대한 효과적인 접근을 위해 본 논평에서는 일단 지하경제에 의존된 권력구조 창출 구도를 두 차원으로 구분하여 접근할 것이다. 그중 하나는 변혁기의 불안정과 불확실성 시대 추이로 인한 정치권력의「4대 유착」(정경유착, 정종유착, 정언유착, 정폭유착) 배경 및 정치 행태구조를 해석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문민정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모순적 편견에서 비롯된 양비론적 권력 구조와 「정언유착」즉, 제4의 권력, 매스미디어의 여론 정치적 세력으로 나타나는 권위주의적 퍼스낼러티에 따른 지역 균열의 정치구조 및 정치자금 개혁 함의를 설명하는 일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그 동안 비교적 많은 논평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분야의 논평은 정치권력 구조 자체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 정치권력 구조의 배경 및 잠재적 요인에 대한 분석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보다 충실한 설명은 이러한 지하경제적「4대 유착」관계 및 불평등 구조가 정치 과정에서 어떻게 매개되고 표출되느냐에 대한 역사적 고증 및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논평에 사용한 정치권력 관계에 대한 논의와 그 자료는 그 동안의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되어 온「4대 유착」의 정체감 및 그 특성, 정치재편 속에 숨겨진 지하 경제적 정치권 정략에 수립된 정책들이 국가안보 및 사회 전반에 걸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사회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문민정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모순적 편견에서 비롯된 양비론적 권력 구조에 대한 논평은 정권창출 관계와 정권유지 차원에 활용되고 있는 매스미디어의 구조적 한계가 최근 정치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분석할 것이다. 이는 한국의 정치과정에서 문민정부가 갖는 의미와 성격에 대한 분석이 될 것이다. 현재 문민정부의 정치권력 구조는 야당의 ‘홀로서기’가 아닌 3당 합당이라는 변칙적 방법을 통해서 구체화 되었는데 이것은 한국사회의 격변기에 따른 불안정과 불확실성의 시대 추이로 인한 복합적 인과관계로써 형성된 정치권력 구조이다. 따라서 문민정부의 정치권력 구조로써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지배체제의 성격, 정치제도, 정치자금, 정당정치, 후계자 선정 등 정치적 환경의 제약 속에서 유인되고 선택된 것으로 파악할 것이다. 또한 여론정치에 의존된 문민정부의 권위주의적 퍼스낼러티와 정치적 대립이 중첩된 집단 이기주의의 갈등이 가져다 준 영호남 지역 균열 현상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