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워(War) 게임_(Mr. Jung-Sun Kim)_(11-12)

 

 

1. 군사전략의 개념

2. 한국의 군 구조 실태와 문제점

3. 예상되는 한국군의 작전술

4. 전쟁과 군비통제 항공강압 및 해군전략

 

 

4. 전쟁과 군비통제, 항공강압 및 해군전략

 

 

한반도내 군비통제와 강압작전

 

 

동서양 진영 간 경쟁과 대립으로 특징 지워졌던 전후 얄타체제의 붕괴 이후, 국제적인 협력과 상호 공존의 논리를 갖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도래함에 따라 한반도 분단의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냉전체제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던 군사적 대치상황으로부터 실질적인 차원에서 상호 신뢰구축과 군비통제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진일보된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최근 고르바쵸프의 신사고정책과 일련의 동구 개혁, 그리고 소련 쿠데타 이후의 개방 가속화와 공산주의 포기, 민주주의 실현, 공화국주권인정 등 신 국제질서의 흐름이 한반도 군비통제에 유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북한이 근본적으로 군사력에 의한 한반도문제의 해결책을 포기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군사력이 한반도문제 해결의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한반도 긴장완화의 핵심 이슈로서 군비통제 논의는 남북한 양 당사국에 의해 보다 구체적인 필요성을 띠고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군비통제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정책의 하나로 현시점에서 남북한 간의 한반도안보협의체(CSCK : 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the Korea peninsula)와 같은 상설회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군비통제를 위한 상설기구는 한국의 입장을 보다 명확히 북측에 전달하고,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며 상호신뢰증진을 통해서 실질적인 이익을 공유하고, 신 국제질서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남북한 간의 신뢰구축상의 특수성과 제반 여건을 고려하여 한반도 군비통제를 위한 신뢰구축 방안을 검토함에 있어서

첫째, 남북한 간의 갈등의 핵심적인 문제는 정치, 군사문제로서, 이로 인한 긴장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호신뢰구축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신뢰구축을 위한 노력은 군축협상에 선행되거나 최소한 병행되어야 하며, 군축협상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 간의 뿌리 깊은 상호불신 상태 하에서는 군축에 앞선 신뢰구축조차 달성하기 어려우므로, 이를 위한 기초적인 예비 신뢰구축 조치(Pre CBMs)나 신뢰구축을 위한 신뢰구축 조치(CBMs for CBMs)가 필요하다.

 

이러한 예비 신뢰구축 조치는 자국이 일방적으로 행 할 때 초기 신뢰형성은 더욱 촉진될 것이다.

 

셋째, 남북한 간의 각각 상이한 체계와 정치현실을 고려할 때, 쌍방에 의해 제기된 여러 가지 방안 중에서 상대방이 쉽게 수용할 수 없는 방안이 있으므로, 일괄타결보다는 공통된 제안의 부분적 합의전략이 초기의 신뢰구축 협상을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다.

 

유럽의 경험과 한반도 군비통제방안 검토과정에서 도출될 수 있는 효과적인 절차는 예비 신뢰구축 조치(신뢰구축을 위한 신뢰구축조치) - 정치적 신뢰구축 조치 -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 군비축소의 4단계 접근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군비통제의 전략을 수립하고 각 단계에서 효율적인 정책들을 개발하여야 한다.

 

이러한 4단계 접근전략에서 남북한 간에 적용 가능한 신뢰구축 방안으로서

 

첫째, 예비 신뢰구축 방안으로 인적, 물적 교류 확대와 상호 협의 없이 실행할 수 있는 자발적인 조치들이 검토될 수 있으며

 

둘째, 정치적 신뢰구축 조치로는 남북한 기본관계에 대한 잠정협정체결, 남북한 평화 및 불가침협정, 최고책임자 회담 및 국회회담 정례화, 남북한 상주대표부 설치 및 다각적 교류확대, 전파 및 출판물 교류, 정보의 이용보장, 그리고 국제적인 보장 장치가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으로는 정보교환 조치, 중요한 연중 군사 활동의 사전통고, 부대기동의 사전통고, 군사 활동의 참관 조치, 기습공격과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규제조치, 검증 및 제재조치 등이 다각적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뢰구축 방안은 비록 단시일 이내에 가시적인 효과가 없을 지라도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할 과제인 것이다.

 

유럽의 군비통제협상 접근방식 측면에서 크게 유럽 안보협력회의(CSCE)식 접근방식과 상호균형감군(MBFR)식 접근방식으로 대별되는데, 선 신뢰구축 후 군비축소의 방식을 채택한 CSCE식 접근방식은 최근의 파리헌장 및 유럽 재래식 무기감축 협상(CFE)의 타결로 성공리에 완수되었으나, 군비축소로의 직접적 접근방식을 채택했던 MBFR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특히 기본적인 신뢰마저 형성되어 있지 않은 한반도군비통제 접근방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북한은 그동안 위장평화공세를 위한 남북대화를 계속하여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1970년대 7 ․ 4 공동성명합의,  80년대 고려연방제, 민족통일 촉진대회, 남북한 1백인 정치회담,  3자회담 등 무수한 제안을 내놓으면서 실질적으로는 폭력혁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즉 평화적인 제스처로 위장하여 한반도를 국제무대에서 고립시키고 남한 내부의 체제를 혼란시키면서 적극적인 테러, 요인 암살로 무정부상태로 만들고 남한 내의 혁명역량을 봉기시켜 결정적인 순간에 정규군을 동원하여 무력적화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68년 1월 북한의 무력도발은 절정에 이르렀다.

 

북한은 김신조 일당의 무장 게릴라 조를 서울로 침투시켜 청와대를 기습하려던 1․21사태를 야기 시켰으며 바다에선 미국 해군정보 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납치하여 승무원 83명 전원을 인질로 잡는 모험을 감행했다.

 

1969년 4월에는 청진 동남쪽 공해상을 날던 미국 해군 대형 정찰기 EC-121기를 북한의 미그기 2대가 요격 격추시켰다.

 

1970년대 7 ․ 4 남북 공동성명 발표로 남북화해 무드가 한창 고조되고 있을 때 그들은 휴전선 땅 밑으로 남침용 땅굴을 파 내려오다 발각되기도 했다.

 

1976년8월18일 판문점에서 미군장병 2명이 현장에서 피살되고 9명이 부상한 도끼만행사건을 일으켰으며 80년대에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극악 범죄를 저질렀다.

 

아시아, 태평양 순방길에 오른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멀리 버마까지 쫓아가 몰살할 목적으로 폭탄을 장치하여 17인의 정부요인과 수행원들의 목숨을 무참히 앗아갔다.

 

또한 1987년도에는 88서울 올림픽을 저지할 목적으로 민간인이 탑승한 KAL 858기에 대한 폭파테러는 남북대화 뒤에 숨어있는 그들의 대남 적화통일을 위한 폭력성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는 것들이다.

 

따라서 북한의 테러가 계속된다면 적의 테러 지원능력을 제거하여 적의 의지에 영향을 주어 더 이상 이러한 행동을 차단하는 목적이 설정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확전의 매개변수를 고려하여 전면적인 보복이 아닌 부분적 지역,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무기의 제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목표를 확실히 구별하고 응징보복에 따른 적의 대응을 고려한 전면적인 작전대비로 적의 재도발을 억제하면서 적의 재도발 시 엄청난 보복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할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도 한국을 교란시킬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으나 그들의 도발사례에 대한 항공력의 강압적 사용전략은 전무한 실정이다.

 

1976년8월18일 도끼만행사건 때 한국 ․ 미국 상호 협동 하에서 미드웨이 항모를 주축으로 한 기동함대가 동해안으로 진입하고 B-52 전략 폭격기가 위협비행을 하는 가운데 미루나무 절단작업을 감행한 것이다. 한국군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 만반의 일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한국 미국 양국군이 보여준 그 같은 군사력의 시위는 자유세계에 대해서는 한국 미국 양국의 안보 파트너쉽이 견고하다는 사실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의 무력도발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두 동맹국의 단호한 결의를 적대세력에게 천명한 케이스였다.

 

이 힘의 시위는 상당한 효력을 발생했다. 전쟁가능성까지도 각오하고 강행된 이 작전은 마침내 김일성의 유감표명을 얻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미군장교 2명이 살해된 충분한 보상은 아니더라도 유엔군 측의 대규모 군사력 시위 직후에 나온 김일성의 수세적 반응이었다는 점에서 보복 확대를 의식한 간접적인 굴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항공강압전략은 대 북한에 대한 미루나무 사건으로 그 효용성을 입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시 군사력운용에 관한 인식은 매우 미약하다.

 

이러한 작전을 위한 군사력 건설방향은 전쟁의 전 스펙트럼에 대비한 무기체계가 필요하고 특히 주간, 야간에 기습이나 화력의 집중을 달성하기 위한 무기체계의 질적인 면의 고려가 우선시 되어야할 것이다.

 

항공력의 강압적 사용은 강압전략 자체가 매우 정치 외교적이고 구조 의존적 이므로 최후의 사용수단으로서의 인식이 중요하고 정치외교적인 차원의 많은 대안개발과 함께 유연억제방안(FDO:FLEXIBLE DETERRENT OPTION)의 하나인 항공력의 사용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하겠다.

 

무력의 충돌은 국제정치현상으로 국제여론, 국내여론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객관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과 상대방에 대한 강압외교의 끈질긴 줄다리기가 있어야할 것이다.